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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Jun 06. 2018

관계의 스트레스란

운좋게 좋은 누군가를 만나도 스트레스는 여전하다. 어릴 땐 쉬웠나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그 때도 싫었던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어리기 때문에 괜찮은 부분들이 대다수였다. 친구들은 어렸고, 그 시절을 보내던 중 몇 명이 남은 것은, 서로 죽도록 잘 맞는다기보다는 시간의 힘이 크다. 시간이 서로를 설명했고, 아직도 모르거나 덜 익힌 부분이 있을 테지만 시간은 또 설명할 거다. 뭐, 기회가 허락된다면.


나이가 좀 들고나서부터는 그러니까 그런 통과의례들을 예전보단 수월하게 다룰 수 있게 된 건지, 그조차 귀찮은 건지, 아니면 굳이 그래야 하는지를 판단하게 된 건지, 어쨌든 그렇다. 그러다 자연스레 그런 대화를 하게 될 타이밍을 만나는데, 그건 보통 꽤 시간이 흐른 후. 그런 게 이루지는 관계는 그래서 적고, 나 역시 굳이 그런 말을 주고받고 싶진 않다.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큰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흑역사라 생각해서 정제되지 않은 말들을 내뱉으려 했던 이 공간에 그냥 이런저런 진심을 적어보는 건, 점점 기억에 의존하는 데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어려서 뭐 다 잘 기억하긴 하지만, 그래도 순간의 감정들은 꼭 날 것으로 남겨둬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내가 괜히 뭔가를 두려워 했다면 지금의 나는 그래도 별 거 없다는 걸 안 모양이다. 물론 SNS는 제외한다. 그건 아직도 쓰임새를 모르겠는 물건(물건 아닌 거 앎)이다.


새롭게 시작되는 관계는 솔직히 말하자면 성가시다. 때론 필요하지만 어딘가 한없이 부담스럽고 무겁다. 참 인간은 간사해서인가. 거리가 확보되지 않는다면 나를 잃기 쉬울 그런 일에 뛰어들고 싶지 않다. 뭐 평생 몇 번 있을 법하게 자연스러운 그런 상황들에서도 참 자연스레 응해야 하는 건지 계속 분별하게 된다. 사람을 쉽게 믿었다가는 뭐 큰 일까진 아니더라도 괜히 내가 상처받게 되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 두렵다기보다는 귀찮거나 혹은 무섭거나 뭐.


더불어 관계가 지속될수록 자신에 대한 지속적인 애정 혹은 충성, 대화에 대한 완전한 기억 따위를 바라는 것은 더욱 성가시다. 그 자신도 그렇지 못할진대 상대에 대해 집착 혹은 뭔가를 갈구하는 그런 관계. 늘 그렇듯, 받는 입장에선 숨막히고 짜증이 난다. 이럴 때야 비로소 극도로 싫어하는 그 자세를 가져 온다. 그러려니 혹은 그러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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