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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Aug 24. 2018

밤을 이겨낼 나와 우리에게

이 글은 애써 찾은 일상의 템포를 잃고 우울해진 당신과 나를 위해 적습니다.


나는 기자만 되면 다음은 뭐든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나는 내 순발력과 판단력을 믿었다. 그게 날 이끌어줬고, 나를 살게 해줬기 때문이다. 지금에야 깨달은 건 그 때 아는 '나쁜 일'의 범주는 지금 아는 것과 크게 달랐다는 거다. 기자가 되고 싶다던 내게 극단적 가정을 했던 모 교직원의 발언에 화가 났던 스물두 살의 나와 지금의 나는 생각이 좀 다를 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그러겠지. 이겨내지 마. 몰라도 되는 것들이 있어. 혹은 오염될 테니 마음의 준비를 해두렴. 이런 말들로 경고 혹은 만류를 하려 들지도 모른다. 아니다. 내버려둘지도 모른다. 네가 갈 때까지 가보렴. 모든 건 네가 감당하는 거란다.


실망거리 가득한 일상에 상처받지 않기로 했던 건 감사하는 습관을 익힌 덕이다. 감사의 습관은 수십년째 지속되는데, 때로 악한 자는 그걸 알고 이용하기도 하고, 나는 그 악으로부터 도망치려 발버둥치기도 했다. 가끔은 그걸 이용하는 자를 나도 이용했다. 두 번째 이용은 그냥 일감을 얘기하는 거다. 일을 많이 하는 게 좋았고, 난 내가 사랑하는 일에 충실하게 쓰인다는 게 좋았다. 이건 다 세상에 대한 정의감에 불탔을 때의 일이기도 하다. 그 땐 확신 같은 게 있었다. 지금 이렇게 힘들지언정 훗날엔 다 거름이 될 것이다. 세상은 결국 올바른 방향으로 천천히라도 나아가기 마련이다. 따위의 생각으로 내 고통 따윈 금세 잡았다.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이 모든 걸 다 당한 피해자라는 사실은 내게 별 거 아닐 지도 모른다. 거기다 또 다른 나쁜 일까지. 이 모든 것들만 나열하면 나는 꽤 힘든 삶을 살았던 사람 같지만 현실의 나는 그렇지 않다. 그걸 다른 사람에게 공공연하게 말할 필요도 없고 티낼 이유도 없다. 그래서 난 미래에 살았다. 미래에 살면 나를 굳게 믿을 수 있었다. 미래에 살면 답이 나왔다. 미래를 위해선 현실 따위 감내할 수 있었다. 눈 꾹 감고 시간이 미친듯이 흐르도록 생각할 짬을 주지 않았다. 그럼 괜찮았다. 1년 2년 3년 뚝딱 흘려 보낼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나를 순간순간 괴롭혔던 건 죽고 싶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힘들 거라면 그냥 놓아버리자 따위의 생각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찾아왔다. 그 생각에 맞서려고 몸부림을 쳤다. 생각은 해야지! 하고 하게 되는 게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배경화면에 있는 거다. 또, 문득 그런 공포가 밀려오는 거다. 그건 일을 하고 이상한 일들을 겪으면서 심화됐다. 나도 모르는 새 내 마음에는 병이 들었다. 미래에 살면 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래. 나는 내가 생각했던 얼마간의 껍데기는 가졌을지언정 그 미래에, 껍데기가 건강하면 마음도 합리화가 될 거란, 그런 냉정한 생각을 내게 하고 있었던 거다. 그 잘못으로, 나는 마음의 병을 얻었다.


나아지고 있는 것이 확실한데, 문득 문득 오는 '마음의 병'에 어찌할 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수많은 밤을 지새운다. 뭘 보고 쓰며 읽으려고 난리를 친다. 답을 찾고 싶어서다. 가만히 쉬는 법을 익히지 못해서다. 가장 쉬울 줄 알았던 그 일이, 내겐 정말 어려운 일이 되었다. 해서 나는 마음의 소란이 크게 일어나는 밤에는 그저 앉아 있는다. 그저 앉아서 뭔가를 쓸고 닦고 찍고 그런다. 그렇게 수많은 밤을 이겨내고 있을 또 다른 사람들도 있겠거니 한다. 밤은 두렵고 무섭지만 이젠 내가 또 견뎌내야 할, 건강하게 보내는 법을 배워야 할 대상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나를 설득하기로 했다. 선인장처럼, 그저 묵묵히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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