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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Sep 15. 2018

콘텐트를 만드는 일

마감 후 선배와 수다꽃을 피우면서 밤을 꼬박 새웠다. '또 새웠군' 하고 놀라지도 않았다. 주로 80퍼센트는 일 얘기로 구성된 선배와의 대화 시간을 보내고 나면 늘 동이 텄다. 중간에 시계 한 번 볼 법 한데 그런 일은 없다. 이야기가 끊겨 무슨 얘기를 하지 억지로 짜낼 법한데 그런 적도 없다. 참 신기하고도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별 거 없는 신변잡기 이야기로 대화를 이어나가기도 어려운데 우리는 참 별 얘기를 다 떠들어댄다.


긴 시간 지치지 않는 대화가 가능한 이유는 첫째, 서로의 얘기를 듣기 때문이다. 둘째, 대화가 쌍방이 이어가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셋째, 일단 둘 다 체력이 괜찮기 때문이다. 힘들다 어쩐다 과거같지 않다 툴툴대도 행동으로 증명한 거다. 아직 쌩쌩하고만. 선배와의 대화 시간은 주로 발제 회의에 대한 고찰, 앞으로 있을 회의를 각자 대비, 지난 기사들과 앞으로 만날 기사들에 관한 주절거림이 이어진다. 최근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에 빠진 나는 다이어리를 펼쳐 들고 이런 저런 단상들을 적어 내려간다. 스티커도 붙이고, 펜으로 밑줄도 긋는다. 그럼 선배는 말한다. "그래, 그렇게라도 견뎌야지" 응?스럽지만 대체로 맞는 말이다.


최근엔 예전처럼 24시간 카페가 많지 않아서(특히 광화문, 시청 일대는 저녁 8시만 되어도 불 꺼진 도시가 된다. 퇴근이란 걸 하고 나면 대체로 연 밥집도 많지 않아서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다른 역까지 술술 걸어가곤 하는데, 그마저도 밤샘 카페가 눈을 씻고 찾아 봐야 할 수준이다. 불과 2015년, 내가 이 근방에서 인턴 생활을 하고 여기까지 걸어와 소주 6병에 육회 혹은 선지해장국을 먹을 땐(허세 같지만 맞다. 지금은 절대 먹을 수 없는 양이라서 신나게 적어둔다.) 그렇게나 불 켜진 곳이 많았다. 함께 술 먹은 인턴 동료와 첫 차가 올 때까지 기다릴 안전한 24시간 카페고 있었다. 결국 2018년을 사는 나와 선배는 눈에 불을 켜고 24시간 카페를 찾아 들어간다. 얘기가 이어지는 동안 음료를 족히 네 번은 시킨다. 망고주스 따위를 몇 번이나 들이켜고 나면 또 갈증이 타오른다. 새벽이라서, 혹은 얘기가 끊기지 않아서다.


그렇게 밤을 새고 근처 24시간 멸치국수 집 따위의 맛집을 찾아 가면 또 다른 얘기가 시작된다. 그럼 선배는 "넌 참 술도 안 먹고 취한 것처럼 잘 논다"고 말하는데, 이건 또 어디서나 들어본 얘기라 역시 나는 그런가보다 하고 '지금 꽤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라고 스스로 생각하곤 한다. 편안한 사람하고 있을 때만 나오는 얘기들이라 그렇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게 선배와 장시간을 보내면서 나름의 아이디어 노트를 끄적이고 앞으로를 걱정하고 나면 결국 또 동은 터오는 법이다. 잘 이겨내기 위해 혹은 열심히 해내기 위해 이렇든 저렇든 이런 시간은 가끔씩 필요하다. 콘텐트를 만드는 일에 대한 궁극적 고민을 하는 것도, 상대적으로 타사에 있을 때보단 아이템에 있어서의 제약이 '비교적' 없는 것도, 그러면서 있는 '우리 회사만의 명확한 기준'에 잘 맞춰야 하는 것도, 이런저런 것들이 머릿속만 부유하지 않게 이렇게 한 번씩 '대단한 공감의 시간'이 우리 삶엔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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