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팔로 쓰는 앎Arm Nov 13. 2018

할머니의 위로 아닌 위로

"어이구 힘들어. 나는 좀 힘들어봤으면 좋겠다. 힘들고 싶다."


나는 힘들다는 말도 안 꺼냈는데 할머니가 말했다. 모르는 할머니. 내가 뒤에 앉아서는 스마트폰을 정신없이 눌러대고 연이어 통화하다가 또 답장을 보내고 그러느라 못 받은 전화를 다시 눌러두고 다른 전화를 또 하고.. 답을 또 하고.. 하는 꼴을 보더니 하던 말. 나는 웃음이 나왔다. 사정을 모르는 이에게 갑자기 받은 위로는 곧 묘한 힘을 주었다. 한 편으로는 괜히 미안한 마음. 웃픈 마음이랄까. 그런 위로 아닌 위로를 받고 나는 웃음으로 답했다. 그러면서 하루 일과가 어땠는지 여쭈었다.


그 할머니는 올해 일흔. 오늘의 일과는 이랬단다. 아침에 눈을 뜨니 아침 5시 20분. 얼렁뚱땅 아침을 보내고 마사지를 받으러 갔단다. 병원에 가서 어깨에 침을 맞기 위해 준비를 하는 거랬다. 갑자기 맞으면 어깨가 놀란다고. 길게 마사지를 받고 나서 물리치료를 받았단다. 마사지 크림도 듬뿍 발랐고 물리치료사에게도 약을 듬뿍 발라달라 주문했단다. 그리고 나서 3시 30분에 일과를 시작했다고 했다. 나를 만난 건 그로부터 약 세 시간 후. 오늘의 목표치는 20만원. 아직 10만원을 벌었단다.


할머니는 그러면서 목동 집 얘기를 반복했다. 중간중간 멋진 풍경이 나올 법한 도로에선 본인 말을 하다 말고 창 밖을 꼭 보라고 설명도 잊지 않았다. 사실 차만 타면 멀미를 하는 나는 꾹 참으며 창 밖을 본다. 그리고 창문을 슬쩍 열었다가 '아이고 추워' 하는 말에 눈치 보고는 슬금슬금 문을 닫는다. 그러면서 기분이 나쁘지 않은 건 할머니가 공유한 삶의 무게 때문일까 아니면 뭘까. 그 할머니가 아는 62세 동생의 1800만원짜리 자전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머리가 지끈. "자기들끼리는 그런 경쟁이 있는 모양이야. 남편 회사도 그렇고 집 평수도 그렇고." 할머니는 묻지 않은 세상사를 들려준다. 아휴. 그렇게 살면 머리 아플 거 같아요. 답하자 "머리만 아프다마다." 하고 강하게 동의하는 할머니.


온종일 토할 것처럼 힘든 하루였는데도 정신은 참 다양하게 위로거리를 찾아낸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침에 눈을 뜨면 두려운 게 싫어서 잠을 안 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