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긴장, 불안이 내게 선물이었던 시기는 지났다. 이토록 몸이 아프고 오래도록 구토 증상을 반복하는 이유는 그저 하나다. 스트레스. 스트레스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이전에는 스트레스가 없어 구토 증상이 없었겠나. 특히 겨울이 되면 구토 증상이 심해지는데 이건 몸이 추위 탓에 더 긴장하기 때문일까. 혹은 연말이라는 무언의 압박이 내게 가하는 무게 때문일까. 늘 나이 드는 것, 시간이 흐르는 것에 대한 압박을 느끼지 않았는데 이 시기면 반복되는 이 증상은 뭐란 말인가. 결국 하나다. 스트레스. 1년을 농축시킨 긴장이 한 번에 무너져 내리는 것. 일주일째 반복되는 토악질, 몸살에 질려 버렸다. 나는 나를 너무나 소모했을 뿐. 이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자의식 과잉이라 거부하고 싶었는데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나를 존중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일하는 게 너무 좋고 행복한데. 체력이 안 따라주니 그저 슬플 따름이다. 해가 지날수록 체력이 뚝뚝 떨어지는 걸 느낀다. 대학 시절 그 먼거리, 많은 일들을 뚝딱 해내고 잠도 잘 자지 않았으면서도 힘든 줄을 몰랐는데. 그 땐 몰랐지. 그 때 소비한 값을 지금 내게 될 거라는 걸. 그 때 알았더래도 그랬겠지. 꿈을 이룬 후라면 내가 또 잘 알아서 감수할 것이다. 근데 과거의 나야. 나는 지금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다. 연말은 1년간 '밥 한 번 먹자'는 말을 주고받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몰아 만날 일이 많다. 게다가 방학을 시작한 동생의 스케쥴에 맞춰 그가 원하는 것 혹은 그가 모르지만 언니로서, 혹은 내가 학생 때 누가 해줬으면 참 좋았겠더라 싶은 것들을 해줄 수 있는 것도(시간을 많이 투자하여) 이 때가 적격이라. 몸이 남아나질 않는다. 오늘 약속을 줄줄이 취소하고 나서야 몸을 뉘이고는 죽은 듯이 잠을 자다가 일어나서 약을 먹고 토악질을 하다가 다시 약을 먹고는 그저 다시 자야겠다 싶어 꿈틀대다가 토악질 나는 속을 부여잡고 이번에는 왠지 토를 참아보겠다고 정신의 여유를 찾겠다고. 그러다 눈물을 줄줄줄줄 흘리다가 일어나 앉아 키보드를 두드린다. 도닥인다.
나는 일을 멈출 수 없다. 지금은 아버지와 떨어져 살아 사이가 많이 좋아졌지만 매일같이 아버지 있는 집에서 산다면 나는 또 아버지에게 맞을 일이 생기지 않을 거라고 자신할 수 없다. 자식을 키우느라 세월을 보냈고 본인은 바람 한 번 피우지 않아 억울하며 등등. 내가 기둥이고 어쩌구저쩌구. 그 말을 이제는 무심히 흘려 들을 자신이 없다. 손찌검과 호통에 익숙한 우리 아버지랑 다시 매일 같은 집에 살 자신이 없다. 지금처럼 가끔 보면서 딸의 소중함을 좀 아시라 혹은 적당히 봐야 좋은 누구들의 관계처럼 그렇게.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자식 키운다고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아버지의 이유 없는 불안과 질투 때문에 친구든 친지든 잘 만나지도 못했던 우리 어머니를 매일 보면서 내가 죄책감을 느낄 자신도 더는 없다. 학창시절 해외 여행 한 번 가지 않은 것, 교환학생 따위 꿈꾸지 않았던 것 등. 나는 내 능력에 자신있었고 일을 빨리 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지만 그 아주 깊은 바닥엔 어쩌면 이 집에 큰 딸로 태어난 것에 대한 이유없는 죄책감이 자리잡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내 동생이 어디 가서 금수저처럼(단순 비유) 떵떵거렸으면 좋겠고 여유 있는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 떵떵거린다는 건, 재수없게 군다는 게 아니라 자기 라이프스타일에 당당하고 멋진 누구들처럼 되었으면 한다는 것. 나는 그래서 동생에게 믿을 만한 기둥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존버 정신의 줄을 잡고. 그저 버텨야 한다.
그러나. 이 죄책감 혹은 책임감은 누가 내게 강요한 게 아니다. 그래서 위에 언급한 가족 구성원들이 들으면 누가 시켰냐고 물을지 모른다. 그럼 나는 황망하겠지. 한 번도 손벌리지 못한 것과 부유한 누구들의 자제와의 비교 등은 필요없는 얘기다. 쓰레기 같은 생각이고. 나는 그러나 그런 비교를 내 앞에서 너무나 손쉽게 말하던 아버지, 어머니를 보면서(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마음 속에서 '나는 무조건 성공해서 기념일마다 커다란 선물, 용돈을 안겨주겠다'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자랐던 것 같다. 또,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겠다는 것도. 그게 지금의 나를 만든 어떤 원동력이었으리라. 그 때문이지. 나는 대학시절 너무나 고통스러워 그저 죽고만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러지 못했다. 용기도 없고 그러고 싶지 않았다. 죽을 거라면 그 힘으로 살아보라지. 그런 약올림을 내 자신에게 했다. 결과는 사회생활을 하며 당한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 다 덮은 나 자신. 일기장이라고 브런치를 만들고도 성폭행에 대해서는 결코 쓰지 못하는 나 자신. 인정하지 않고 잊으려는 나 자신. 커리어에 방해될까봐 다 그저 없던 일로 만들어버린 나 자신. 어디에도 말하지 못하는 나 자신. 이 경험들 또한 자산으로 삼자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나. 이 때문에 왕왕 찾아오는 공황과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나 자신. 의사를 마주하고도 그를 의심 혹은 두려워 해 내 얘기를 하지 못하고 그저 조금의 약만 줬으면 하는 나 자신.
나는 새해를 앞두고 이런 생각을 한다. 체력 관리를 정말 잘해보겠다. 일도 중요하지만 몸도 챙겨보겠다. 죽을 각오로 살라지 하던 나. 그 부작용으로 몸이 렇게 힘들지 예상 못했던 혹은 무시했던 나. 이젠 안 그래보겠다. 또 있다. 회사에서는 일잘하는 Arm이, 집에서는 착한 Arm이, 잘 키운 Arm이, 못된 짓만 일삼는 친척에겐 한 번 만나고 싶은데 안 만나주는, 돈 잘 벌 것 같은데 자기들한테 떨어지는 게 없어 괜히 씹고 싶은 Arm이, 모 회사 미친놈들에겐 '미투'도 하지 못하는 Arm이. 다 버리고. 다 버릴 수 있을까? 다 버리진 못하더라도 내 안의 코어를 찾으리라. 책을 쓰고 싶다는 그 마음 속 외침도 무시하지 않으리라. 내 희망에 정직해지리라. 조용히 추진력 갑이던 나. 그걸 나 자신의 위안을 챙기는 데도 써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