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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Dec 27. 2021

모든 말을 꾹 참는 삶

말을 않는다.


모든 게 정말 부담스럽다.


나는 버겁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참에, 축제 분위기로 가득한 연말이 반가웠다. 좋은 사람과 보내는 잠깐의 시간. 이 시간을 위해 힘든 대부분의 시간을 견디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찰나를 위해. 힘이 들었다. 겪은 일들을 숨기고 살아가지만 때로 울컥 올라오는 것들. 그건 이제 아무 것도 아니었다. 다만 위로부터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고 그 상처는 결국 내게 올 때, 가끔은 견디기 힘들었다. 누군가 물으면 아무 것도 아닌 고통이라 할 것이지만, 그걸 헤집고 들어오는 무례한 얼굴들을 만날 때는 나 역시. 견디기 힘들었다. 욕지기가 치밀었다. 웃으면서 티내지 않지만, 가끔 이런 밤이면. 그러니까, 아주 가끔은. 허무하고 슬펐다. 


후배를 조지라는 지시. 업체를 조지라는 지시. 그저 일하는 것뿐인 이들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쓰라는 지시. 남의 집 담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조지라는 지시. 나는 그것들이 저널리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도 알고 세상도 알 것이다. 정당한 이유도 없고 그래야 할 명분도 없는 것들. 명분과 이유가 있다면 해도 되는 것이냐고 물을 테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다. 예를 들어, 국운을 좌우하는 일 혹은 정말 해당인이 명백하게 잘못한 일 혹은 도의적으로라도 책임이 있거나 뭐 기타 등등. 그런 일이 아니다. 그냥 돈 달라는 장삿속이다. 나는 그런 것에 개인을 희생시키면서 가짜 기자 행세를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거부했다. 많은 것들을 거부했다. 그러나 결과는? 그래서 좋은 선배들은 다 떠났지. 했던 그 떠남의 행렬에 나도 끼어서는, 나는 이제 많은 것들을 돌아보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 시간을 즐기라고 말하겠지만, 나는 그러지를 못한다. 마음이 슬프다. 왜인지 알 수 없어서 일기장을 열었다. 일기장에 키보드를 도닥이면 마음이 정리된다. 마음에 부유하던 억울, 슬픔을 적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된다. 가끔 만나는 무례한 얼굴들은 그저 별 것 아닌 치가 되어 버린다. 실제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자꾸 상처받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러니까, 단단하게 이겨내고 있지만 어떤 부분에선, 나는 슬프다. 세상에 악만 남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존재해선 안 될 괴물이 되는 것이 당연해지는 세상이 되어간다.


성비리가 만연하던 회사들은 결국 피해자들만 떠났다. 더럽게 노는 걸 자랑이라고 여기던 그 회사도 결국 피해자들만 떠났다. 늙은 게 자랑이던 그 회사도 결국 경쟁력 있는 이들은 떠나버렸다. 그냥 당연한 걸 알고, 돌아보지 않던 일인데, 그냥 오늘은 길 가다 봇짐 내려놓고 강물 바라보며 수염 쓰다듬는 노인마냥 나는 그냥 관망해본다. 남의 일인 것처럼, 일어나지 않았던 일인 것처럼. 네가 뭔데 정의로운 척해. 네가 뭔데 애들을 지켜. 독특하네. 기자가 기업 돈 좀 뜯어서 사는 게 왜 정의롭지 않은 일이야. 왜 네 스펙에 그 돈 받으면서 그런 일을 해. 그런 질문들에 대답하는 게 지쳐서. 그냥 말을 않는다. 아무 것도 말하고 싶지 않다. 사람은 보고 싶은 면만 보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사람이 더 많은 게 세상이라는 것. 그게 맞는 말 같다. 이미 답을 정하고 사람을 괴롭힌다. 말을 해줄 필요도, 이유도 없다. 말은 언제나 않는 것이 이득이다. 실제로는 관심도 없는 일들에 대해 그냥 주절대는 사람들에게 나는 설명하고 싶지 않다. 자꾸 말을 걸어서, 귀찮고 짜증난다. 설명하려는 시도조차 안 했다는 말이 아니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데, 못된 사람도 많다. 그런 치들에 대한 말이다. 


애니웨이, 일기장에 쓰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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