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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Sep 09. 2019

우울을 달리는 시간

시계가 운다. 여자는 고개를 들어 시계를 바라본다. 열한 시 반. 애매한 시간이다. 퇴근 후 화장은 지우지도 못했고 빨래는 쌓였다. 세제를 아끼겠다며 일주일 빨래를 모았는데 이게 잘 한 일인가 싶다. 당장 내일 입고 나갈 바지도 속옷도 없거든. 여자는 속옷을 몇 장 더 살까 하다가 만다. 세제를 아끼지 말고 더 사자고 결론 내린다. 여자는 머릿속으로 돈을 계산한다. 뭐가 나을지 모르겠다. 길게 보면 세제를 사는 게 낫겠지만 속옷이 세제 한 통 다 쓸 몇 달이면 또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기분 내키는대로 하자. 그렇게 넘긴다.


여자는 빨래를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우울한 마음을 부둥켜 안고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으리라 다시 거짓 다짐을 한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자꾸만 해대는 여자는, 그냥 엄청 약한 존재일 뿐이다. 이 순간, 고요가 가라앉은 방 안에서 여자는 그저 가만히 무거운 숨을 쉬면서 키보드를 도닥인다. 여자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유일한 순간이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 그게 여자를 숨쉬게 한다.


여자는 남의 말을 잘 듣는다. 자기 의견을 말하기보다는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편이라 상처도 많다. 자기 얘기를 하려 하면 사람들이 잘 듣지 않는다는 게 여자의 주장이다. 아니, 사실은 이렇다. 여자는 너무 세심해서 남들은 자기 얘기 떠들며 주변서 지루해도 무시한다면, 여자는 그런 하나하나를 다 알아채버려 금세 자기 자신의 기운이 빠지고야 마는 것이다. 그런 여자가 말을 하는 때는 꼭 필요할 때다. 일할 때, 일할 때, 일할 때. 그러니 명분이 있는 대화만 하는 여자는 명분없이 떠들어대는 인간들이 지겹다.


여자는 메이크업하는 걸 좋아한다. 긴 머리 빗질하는 것도 좋아하고 쁜 옷을 보거나 친구와 멋지게 치장하는 일도 즐긴다. 여자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또 하나의 일이다. 글 쓰는 일만큼은 아니어도, 제법 재미있는 일이라고 여자는 생각한다. 글, 외모. 여자를 계속해서 살게 하는, 기쁘게 하는 원동력 두 가지. 그러니 여자는 누가 누구에게 화장 하라 말아라,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게 어쩐지 이상하다.


여자는 혼란스럽다. 성적인 피해가 있는 것에 대해서만 조심하면 되는 게 아닐까. TPO란 단어는 왜 있고 이상형이란 말은 왜 존재하는가. 화장하지 말라는둥 코르셋이라는둥 말을 해대면서 남자 아이돌 혹은 여자 아이돌을 소비하고 팬이라 외치며 그들의 외모를 평가하는 이들의 행동에 대해 여자는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저 여자가 이젠 너무 늙어버려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이려니 치부하다가도 아무리 책을 읽어도 나오는 똑같은 대담들에 이상하다. 왜냐하면 그 책들은 이미 수십년 전 발간됐던 저명한 여성학자들의 글이기 때문. 그들 역시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실제 피해가 아닌 여성 내부에서 자신을 치장하는 여성을 공격하는 일에 대한 근본적 원인 혹은 목적이 뭔지 의문을 품었던 바. 여자는 거기에 동의하다가도 내가 감히 이런 생각을 가져도 되는 것인가 무서워 한다.


여자는 유약하다. 여자는 성폭행을 당하고도 말하지 못했다. 여자는 아마 앞으로도 누군가에게든 그 말을 할 수 있으려나 잘 모른다. 몇 번이나 당하고도 공포에 짓눌려 말하지 못했던 여자는 자기 일을 너무 사랑한다. 스스로에게 방해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게 여자의 주장이다. 여자는 종종 자다가 경련을 일으키고 소리 지르며 깬다. 그렇게 깬 잠은 다시 들기 힘드니 날밤을 새운다. 그게 낫다는 게 여자의 생각이다. 잠이 오지 않을 땐 안 자면 된다. 우울할 땐 우울에 빠지면 된다. 상처가 올라오면 상처를 계속 달래면 된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면 내 안에서 모든 치유가 가능하다. 여자는 자가소생법을 잘 알고 있다.


여자는 그러면서 한없이 외로운 인생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인생은 참 살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얼굴들을 보면서 그들과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체 대화를 하고 집에 와 고독을 즐긴다. 여자는 온전히 자기 힘으로 이뤄낸 것들을 하나 하나 뜯어보는 걸 좋아한다. 사소한 소품들마저 여자를 기쁘게 한다. 여자에게 유일하게 '내 편' 혹은 '안정감' 등을 선사하는 건 바로 그것들이다. 여자가 여자 손으로 이뤄낸 것들. 하나 하나 뜯어보다가 또 부담스럽다가도 어느 날은 또 너무나 사랑스럽다. 여자는 그렇게 행복을 찾는 법을 배워 나간다.


여자는 여자가 언젠가는 발작을 이겨내리라 믿는다. 여자는 여자가 언젠가는 공황을 이겨내리라 믿는다. 점차 나아지고 있다는 게 여자의 생각이다. 다만 생각처럼 완전히 지울 수는 없을 수 있겠다는 게 또 여자의 주장이다. 여자는 여자를 또 위로한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덜컹한 일들에 대하여 여자는 그럴 필요 없다고, 다 지나갔노라고, 너는 이제 안전하노라고 위로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자는 생존하는 법을 배운다.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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