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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밟지 마세요

by 팔로 쓰는 앎Arm

선을 넘는 선배들, 술 취한 걸 빙자해 연락하는 할배들, 술 취한 걸 빙자해 은근히 새끼라고 부르는 여자 선배, 술 취한 걸 빙자해 걸죽한 목소리로 레스토랑이 떠나가라 남자들을 욕하는 여자 선배…. 들려도 못 들은 체하고 있어도 봤어도 못 본 체하는, 자기 필요할 땐 친한 후배, 그게 아니면 자기 종 역할을 하길 바라는 이제는 정체불명의 모 선배…. 이들이 내 연말을 망치는 스트레스 근원 중 하나였는데 이제 훌훌 넘기련다. 훌훌 못 넘기니까 여기 이렇게 쓰는 거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상태에 있다고. 그렇다고 합리화하고 나를 도닥이고 싶다. 안 만지는 게 어디야, 아재들 없는 게 어디야, 집과 가까워진 게 어디야,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된 게 어디야 등등. 장점이 더 많다. 그러니 감내하련다. 다 좋을 순 없잖아.


누군가 나를 좋게 생각해줬으면 하는 생각에 넘쳐 나를 무시하는 일은 그만하련다. 물론 그만할 수 없겠지만 그냥 선이라도 그어 보련다. 당신 지금 선 밟았어요. 경고라도 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별 거 아니다. 늘 웃는 얼굴로 대하지 말고. 선을 밟히면 웃지 말자. 웃지 말자. 웃음으로 좋게 넘기려니 안 되는 거다. 좋게 넘기는 것. 좋게 넘기니 말귀 못 알아듣겠지. 좋게 안 넘기겠다 이젠. 과거에 쭉 안 그래와서 그래도 이나마 얻은 거 아닌가요. 그래서 이런 자세를 계속 유지해야 할 건 아닌가요. 따위의 머릿속 목소리가 있었다. 아니. 선을 그었으면 또 어떻게 됐을지 몰라. 그래서 요새는 혼란스럽다. 늘 적지만, 확신에 차있던 목소리에 물음표가 자꾸 달린다. 20대라 그렇다.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니면. 말고.


체력이 부족하니 마음이 서글프다. 사람들과의 약속을 줄줄이 취소했는데 그러면서 한 편으로 다행이라는 마음이 든다. 모순적이다. 만나서 웃으면서 세상 신나는 사람처럼 앉아있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그렇게 소모된 감정들은 집에 와서 충전해야 한다. 또 있다. 원인은. 자꾸 선 넘늠 선배들과 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랬을 거다. 거기서 얻은 스트레스들은 이제 어찌 할 줄 모르는 경지다. 그래서 화가 났다. 진짜 시간을 내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뒷전으로 밀리는 것들. 시간을 내 만나면 몸이 아픈 것들. 시간이 없다는 말이 제일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체력이 안 받쳐주니 시간은 정말 없었다. 악순환이다. 일을 하면 체력을 잃을 수밖에 없으니 방도를 찾아야 한다. 뭘까.


얼마 되지도 않는 팀원들 사이에서, 굳이 분란을 만들고 불평하는 사람을 보는 일은 정말 싫다. 팀원들 탓을 입에 달고 살며 본인이 하나 하면 열을 티낸다. 정말 힘든 곳에 안 가봐서 저러는 건가 싶어서 그냥 웃고 말았는데, 그런 사람은 웃어주면 안 되겠다. 사회생활을 오래 한 사람 중에는 어설픈 여우들이 생겨난다. 하나 하고 열을 말하는 사람, 남이 얘기한 척 자기 불만을 말하는 사람, 어설픈 정치질을 하려는 사람(잘하면 말도 안 한다-사람들을 하나하나 간보고 이간질을 은근히 흘리는 식이다), 자기가 주목받지 못하면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페이스북이 싸이월드를 따서 만들어진 거라는둥-농담인줄 알고 사람들이 웃으니 검색해보라며, 얼굴을 부들부들 떨면서 우긴다). 사람들은 바보여서 그걸 듣고 있는 게 아닌데, 자꾸 막내인 내게 그런 시간이 지난 후에 또 사람들 욕을 쏟아낸다. 그런 사람과 함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오염이다. 선을 이렇게나 그었으면, 이젠 그만 달라붙기를. 자기 심심하면 연애를 하든 문화생활을 하든. 스트레스를 나한테 풀지 말기를. 그 사람을 앞으로는 좋게 넘기지 않으려 한다. 왜냐하면.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환경에 있으므로. 누구도 나를 이 행복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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