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사람을 잘 믿지 않는다. 뭐 상처가 있고 자시고 해서 못 믿어요 흑흑 하는 사연팔이가 아니라 인간이 워낙 다양한 면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를 판단하거나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하는 편. 당장 당신 주위에 있는 인간 하나만 생각해 봐도 그가 당신에게 하는 행동과 윗사람 혹은 또 다른 사람에게 하는 행동이 다 다르다는 건 알 수 있을 거다. 뭐 나쁘게 호도하려는 건 아니고 그냥 사람은 상황과 상대에 따라 여러 면을 나타내기 때문에 내가 선비라 해도 그를 변절자 따위로 흥하고 인연 끊을 거 없이 그냥 저 인간은 그렇군 하고 또 다른 인간 군상을 만나길 기대하거나 포기하면 된다.
인간은 그냥 그런 동물이다. 너무 똑똑해서 여기선 이 얼굴, 저기선 저 얼굴을 한다. 그걸 몰랐던 나는 너무 순진했던 거지. 순진했다는 자기 위안을 하면서 아닌 체 재수없는 잘난 척을 하겠다는 건 아니고 나는 그냥 순진한 인간이었다. 그건 내가 자란 가정 환경도 마찬가지다. 하나 같이 순진한 우리 집 사람들은 마음도 여리고 다른 사람이 변하는 걸 보는 것도 무서워 한다. 했다. 과거까지는. 사회 때를 적당히 타고 나니 나는 인간이란 그저 그런 존재일뿐 별로 기대할 게 없다는 걸 알았고 혼자 고고하게 선비 노릇을 하고 있다마는 나 역시 이게 천성이어서지 좋아서는 아니다. 그저 앞뒤 다르면 내가 나를 검열해 불편해 하고 씁쓸해 하기 때문에 난 그 불편한 게 더 싫어서 그렇게 안 한다.
그래서 문제는 이럴 때다. 선배 하나는 다른 선배를 씹으면서 그가 남욕을 안 해서 싫다고 했다. 같이 욕하면서 친해지는 맛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그 선배가 어디 다른 데 가서는 나를 씹을 걸 알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한다. 과거엔 어머나 세상에 충격이야 그렇다면 이 선배는 나도 씹겠네 어떡하지 안 얽힐래 흑흑 이랬다면 이젠 그냥 아이고 인간아 그래라 너는 이러고 만다는 얘기다.
과거에 나를 롤모델이라며 열심히 쫓아다니던 후배 하나가 있는데 그 후배는 내게 여전히 좋은 동생이지만 나는 그가 여러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걸 안다. 실제 내가 책임자로 있던 곳에 그를 들였을 때 온갖 텃세와 시기에 그가 대처하는 모습을 난 봤다. 그건 그가 나빠서가 아니라 그냥 그게 자기 깜냥인 거다. 나쁘게 말하려는 게 아니라, 그가 상황을 타개해나가는 방식. 선비질이든 롤모델이든 뭐든 일단 자기가 살고 봐야 가능한 얘기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사람은 여러 상황에 대응하면서 결국 자기 잘 살기 위한 길을 도모하는 존재일 뿐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나는 대의 운운하며 선비질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 여전히 나는 농담 삼아 남을 씹고 농담 삼아 욕을 하는 게 싫다. 근데 여러분도 알고 나도 안다. 사회생활, 동문생활 어디든 남 안 씹고 흘러가는 동네가 없더라. 그래서 내가 집순이인 건지도 모르지만, 나는 내가 맞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그냥 혼란스럽다는 거다. 뭐 죽을 만큼 혼란스러운 건 아니고 그냥 가끔 드는 의문. 그러면서 안다. 이런 의문은 앞으로도 종종 생겨나겠지. 퐁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