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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Feb 16. 2019

기자에게 생기는 직업병

필자는 취재원을 만날 때 상대의 반응을 면밀히 살핀다. 살핀다고 살펴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대개 그런 자리에서 누가 더 갑인지 을인지를 판단하고 함부로 행동하는 취재원들이 있기 때문에 학습된 거이기도 하고. 혹은 생전 처음 가보는 좋은 자리서 촌티 안 내고 많이 와본 척하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 번도 안 먹어본 음식과 한 번도 내 돈 주고 방문해보지, 아니, 존재 자체를 몰라 방문할 생각도 '안' 했던 식당에 멋지게 앉아 '이런 건 껌인 체' 행동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면밀히 살피면 어랍쇼. 다들 왜 이리 익숙한가. 언제부터인가. 나는 처음 와본 데는 처음 와본 티를 내고 처음 먹는 건 처음 먹는 티를 냈다. 오바스러운 게 아니라, 그냥 누가 와봤냐고 물으면 처음이라 답하는 것. 그것도 안 하는 사람이 많거든. 그럼 '옳다쿠나' 하고 깎아내리는 꼰대들이 등장하는데 그건 가볍게 한 귀로 흘리면 된다. 단, 한 귀로 흘릴 때는 티를 내야 한다. "아잇, 나 당신 말 한 귀로 흘리고 있는걸?"


무례한 사람들이 해대는 말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물론 내 안에 생기는 생채기는 치유해야 하지만 적어도 나중에 "아잇, 거기에서 이렇게 저렇게 했어야 했는데" 따위의 후회를 하지 않는 방법은 이것이다. A가 허세 부리며 헛소리를 하면 가볍게 다른 사람과 다른 대화를 한다. A에게 꼽주거나 화낼 필요 없다. 대개 A라는 인물에 대해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어떠한 합의 혹은 눈치를 챈 이후이기 때문에 대화는 자연스레 흘러가고, A는 몇 번의 무안을 겪으면서 배운다. "아, 이 사람들은 내가 허세 부리면 한 귀로 흘리는 사람들이구나" 하고. 물론 식자의 경우에서. 여기에서 만일 "농담도 모르는 진지충들아. 너네 왜 이렇게 예민해? 나랑 안 맞아 흥!" 하는 A라면 그냥 더 무시해라. 그래도 좋은 사람은 없다지만 우리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우리 자신 기분도 생각해야지.


취재원들을 이리 저리 만나고 치이다 보면 철갑방어를 친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철갑방어란, 낮은 자존감과 뒤틀린 자존심 그 어디쯤에서, 상대에게 있어 보이고 싶어서 거만과 예절의 경계를 위태로이 넘나든느 사람을 말한다. 이 철갑방어는 대개 상대 앞에서 다리를 꼬거나 반말을 섞어 말하거나 나이 어린 사람들이 뭔가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는 "뭐 하러 그렇게 해 하지 마" 따위를 허세 잔뜩 부려 가며 말하는 게 속한다. 이건 효리 언니가 "뭐가 돼. 아무 거나 돼" 하고 감동의 멘트를 던진 것과 상황과 뉘앙스가 아예 다르다. 우선, 당신은 효리 언니가 아니고, 우리는 업무 중이며, 당신이 상대하는 우리는, 기자라는 직업에 앞서 사람이다. 정치인들의 무례한 말이 주는 '그럼 그렇지' 하는 실망감과 기본권 얘기한답시고 감수성 이야기를 다루는 사람이 주는 '묘한 실망감'은 결과 무게가 참 다를 수밖에 없다. 다를 수밖에 없는 게 틀린 걸까 라고 생각도 해보다가 만다. 그냥 아직은, 고군분투 중이다. 횡설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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