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팔로 쓰는 앎Arm Apr 14. 2019

후배의 덕목

'한 조직에 들어간다'는 한 문장은 여러 의미를 담는다. 그 조직의 시스템에 입장한다는 것. 그 조직에 형성된 관계들 속에 입장한다는 것 등이다. 그러니까, 회사에서 '선배들한테는 안 그러면서 막내에게만 그런다'는 툴툴거림은 응당 어떤 상황인지 예측할 수 있는 말이다. 즉, 특히 당신이 그 팀의 막내거나 막내는 아니지만 선배들과 연차 차이가 미친듯이 크다면 당연하다. 이유는 이렇다. 첫째, 선배가 '진짜' 꼰대일 확률이다. 진짜 꼰대라는 건 정말 게으르면서 막내에게만 모든 걸 미루는 이를 뜻한다. 둘재, 선배가 후배를 누른다는 것. 누른다는 건 선배가 후배가 너무 나대지 않기를 바란다는 걸 뜻한다. 이 둘은 읽히기에 따라 나쁘게도 혹은 좋게도 보일 수 있다. 어떻게 좋게 보이냐고. 선배가 후배에게 가르칠 건 가르치고 선배가 책임질 건 책임지는 선배라면 말이다.


윗 문단 마지막 문장의 선배를 만나는 건 '금방 조직에 들어갔을' 당신에겐 행운이다. 책임지기 싫어서 메뉴 하나 제대로 못 정하고 후배 떠안기 싫어서 회사에 안 들어오거나 자기 흠 보일까봐 후배에게 비싼 척하는 선배도 많기 때문이다. 이 선배들이 나쁜 사람이라서기보다는 그냥 그 선배들은 인격이 거기까지일뿐이다. 그러니 혹시라도 당신에게 사사건건 책임져주는 오지라퍼 선배를 만났다면 '행운'이라고 여기길. 그 선배가 정말 빈틈없이 원칙주의에 따라 행동한다면 박수까지 치길. 그런 선배는 거의 없으니까. 아니, 선배도 모르니까. 그 선배도 세상 살면서 원칙과 유도리 중에 고민중이지만 어쨌든 시스템에 당신보다 먼저 적응하려 노력하던 분일 테니까.


그 조직이 좋다면 그렇게 생각하라는 말이다. 물론 대개 쓰레기 같은 집단도 있다. 변태거나 변태거나 변태거나. 여성인권이 아니, 여성이 사회에 나와서 이렇게 일한지가 우리 생각보다 얼마 안 됐다. 100년이라고? 60년이라고? 50년이라고? 길어 보인다고? 길지 않은 세월이다. 밀레니얼 세대인 우리에게도 얼마 안 된 세월인데 이미 고인 물에서 썩었던 남자 관리자들 일부에게는 더 생경하겠지. 뭐가? 여자들이 자기랑 똑같이 뛰고 일하는 게. 이해하라는 게 아니고, 그들이 잘했다는 게 아니고, 그들을 만나면 그들이 어릴 때부터 나고 자란 그 편견을 당신 혼자 깬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니, 쓸데없는 상처 얻지 말고 나와라. 물론, 최소한 당신이 얻을 건 다 얻고. 그 때까진? 죽어라 벼텨야지 뭐. 시간이 답이다. 욕심이 있다면. 자, 욕심이 있어야지만 버틸 수 있는 고인 물은 없애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러니까. 버티다 나오라고. 이직하라고. 그런 기억을 가진 당신이 업계에서 떠나지 말고 버텨야 그 업계가 좋게 굴러갈 테니까. 그런 놈들이 사라질 때까지 버텨야지. 당신 같은 사람이.


자, 돌아와서 이제 그런 변태 같은 조직 말고 다른 얘기해보겠다. 당신이 막내 혹은 후배로서 선배에게 '줄을 잘 댄다' 혹은 '비위를 잘 맞춘다' 등에 대해 덮어놓고 짜증낼 게 아니다. 그러니까, 대체로 맞는 일을 하는 정상적인 축에 속하는 선배라면, 그런 일도 당신의 몫이다. 물론 선배가 돈도 더 받고 하는 일도 당신보다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런 선배도 실제 다수 존재할 테고 말이다. 하지만 선배가 있다는 것. 그 선배가 조직에서 버티고 있다는 것. '우리 팀 선배'가 있다는 것. 아니, 이렇게까지 말하면 정신승리 같긴 한데 어쨌든 그 조직에 들어갔으면 그 조직의 질서에 잘 따라주는 것. 뭐 그것도 재주가 될 수 있다. 당신 판단에 그 조직이 '정상'으로 판결났다면. 그리고 흘려 들어라. 당장 당신만 해도 후배 혹은 아는 동생에게 편하게 떠드는 '아무 말'이 있을 거다. '정상'인 선배 일부가 당신 편해서 '아무 말'을 하는 경우가 있을 거다. 그런 거 계속 들어주면 일부는 과한 경우가 생긴다. 그럴 땐 정중하게 선 그어야 한다. 선 긋고 멀리 하고 대신 비위는 잘 맞추고. 어려운 게 사회생활이고 돈 버는 거 쉽지 않다.


매거진의 이전글 선배, 제발 한 달만 쉬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