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박하지 말지어다 '커피에 대한 충성!'

by 팔로 쓰는 앎A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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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충성! 커피에 대한 충성!


대한민국 직장인 중 커피를 안 먹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점심시간 사원증 걸고 커피 한 잔 드는 게 로망이었다던 사람이 '취뽀' 후 선망의 대상으로 보였던 게 실은 현실 유일 탈출구라는 걸 알았다는 농담이 인터넷을 떠돌았다. 커피 한 잔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허락된 유일한 마약이니까~ 따위의 자조 섞인 농담도 떠돈다. 그만큼 커피는 직장인의 '억지로 낸 휴식'을 대체하는 단어가 된지 오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커피를 먹지 못하는 필자에겐 그래서 커피타임은 늘 흥미로운(?) 시간이 된다. '아메리카노' 혹은 '라떼'를 부르는 상황에서 '전 얼그레이요', '전 에이드요', '전 주스요'를 말하는 이는 '보기 힘들었던 종류'가 될 때가 있기 때문. 필자는 N년차 기자로, 각종 인터뷰나 미팅에서 차 한 잔 시키는 게 당연한 문화에 산다. 그러기에 서로의 차 취향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은데, 대체로 그 취향이란 것은 '커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필자의 브런치를 구독해오신 사랑하는 독자님들이라면 혹은 필자의 글을 몇 개 읽으셨다는 사랑하는 새 독자님들이라면 아시겠지만 필자에겐 역사가 있다. 뭐 이런저런 혼란의 시간을 거쳐 안정기에 접어든 필자. (혼란의 시간을 언급한 건 일하면서 하도 술을 마셔대서 속이 다~ 상했다는 얘기를 전제에 깔겠다는 심보다) 필자 역시 고등학교 시절엔 하루 커피 믹스 일곱 개를 마셔도 책상에서 꾸벅꾸벅 조는 새벽을 맞았으며 커피 여러 잔을 여러 미팅서 마시고 술을 7차까지 마셔대도 잠을 쿨쿨 자다가 다섯 시면 벌떡 일어나는 시기를 거쳤다. 지금도 늙은 나이는 아니지만 그렇게 닳아없어진 필자의 어떤 체력은 이젠 커피를 거부한다. 커피를 마시면 배가 살살 아프고 골이 당긴다. 그렇게 피곤해도 이부자리에 누우면 눈이 말똥말똥해서 당황스럽다. 필자는 그래서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커피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커피 거부 선언! 커피를 사랑하는 수많은 직장인들에게는 어려울 일! 이건 마치 '마음대로 먹게. 난 자장면'에서 '전 짬뽕이요'를 외치는 격! 그러니…. 필자는 눈치껏 상황에 따라 통일해야 할 땐 커피를 시키고 한 모금도 마시지 않거나 하는 처세(?)를 부리다가 어느 날 '커피가 무슨 죄' 하는 생각에 당당하게 차를 시키기 시작한 것.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라떼'나 '아메리카노' 혹은 '시즌 음료'를 주문하는 이에겐 가지 않는 질문이 '차' 종류의 것을 시키면 늘 퐁퐁 생긴다는 것. '얼그레이요' 하는 순간 '커피 안 좋아하시나봐요', '커피를 잘 못 드세요?', '언제부터 커피 안 드신 거예요?', '커피는 왜 안 먹어요?', '커피를 싫어하시나봐요' 등 다양한 형태의 질문이 돌아온다. 그러니 이걸 감당하기 싫으면 그냥 커피 시키고 안 먹는 거고 죽도록 목 마른데 남들 다 먹는 음료, 나도 차라도 마셔보자 하는 식으로 시킨 날에는 감당하는 거다. 저 사람들이 궁금해서 묻겠나. 할 말 없으니 이 때다 싶어 묻는 거지. 그러나 가끔은 대화가 길어진다. '커피를 왜 안 마시게 됐는지'에 대한 상세한 연월 포함한 이유 설명 부탁부터 '자신이 커피를 끊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한 변명' 나아가 '죽어봐야 커피 마시지' 등의 황당한 말까지 듣는 것. 이들은 한 번 있던 일이 아니고 여러 번 있던 일이기에 이젠 '커피 못 끊는 게 죄도 아닌데 왜 발끈하지' 하는 생각으로 넘기지만 처음엔 황당하기 그지 없던 일이다. 물론 겉으로는 웃고, 속으로 황당했지. 어른들한테 황당하다고 할 수 없잖아.


필자가 일하는 동네에는 야행성 인간이 넘친다. 사실 야행성 인간이라는 게 좋은 건 아니다. 아침형 인간이 좋은 거냐고? 그것도 아니다. 다만 문제가 있지. 필자가 그간 생각한 '사회에서의 야행성 인간'이란 정시출근했으나 밤에도 일을 하고 날밤 새우는 선배들이다. 그러니까, 필자가 익숙했던 사회에서의 곳. 그 때도 필자는 커피를 마실 필요가 없었는데, 사실 잠을 깨고 마는 건 정신력의 차이이지 커피의 덕이 아니다. 필자는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생각해보라. 극단적이지만, 당장 처리해야 할 급한 일들이 있는데 잠이 온다는 건(물론 이틀 밤 새우고 일하고 뭐 그런 건 미친듯이 졸려서 뭐라고 필요하겠지) 정신력의 문제다. 자기관리의 문제고. 운동도 안 하고, 늦게 일어나고,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서 늦게 잤으니 당연히 다음 날 졸리고, 그걸 커피 마시면서 위안하고, 남을 힐난하고…. 에이고 이 사람아, 속 보인다 속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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