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에 대하여

by 팔로 쓰는 앎Arm

어린 시절 나의 어머니는 집밥을 늘 멋드러지게 차리시는 분이었다. 어린시절이라고 해봤자 고등학생, 나아가 대학생 초년병 시절까지니까. 우리 어머니는 꽤 오랜 세월을 그렇게 멋드러진 집밥 차리기에 익숙하신 분이었다. 남의 집 테이블도 다 그런 줄 알았던 나는 몇몇 친구네서 테이블을 보고나서 그게 당연한 게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어린 시절 소위 '인싸'였던 우리집엔 애들이 거의 매일 놀러왔다. 그럼 다들 놀랐다. 집에 신기한 물건이 이 많았고 우리 어머니의 한상차림은 어마어마했으니까. 서울 토박이인 우리 어머니는 책임감으로 그렇게 멋진 한상차림을 매일같이 뚝딱 차려내셨다. 지금도 그러시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사람들은 집밥이 생각난다고들 말하지만 웬걸. 나는 만성 소화불량에 소식지향자로서 그렇지는 않다. 그건 결핍이 없기 때문일 거다. 우리 어머니는 늘 날 위해 뚝딱 한 상 차려내시는 분이고 그런 분이 든든하게 버티시고 계시다는 걸 마음 한 켠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핍이 없다. 나는 위대한 어머니를 가졌으니까. 다만 밖에서 밝게 웃으며 일하다가 집에 와서 쉬며 즐거운 영화를 보고 깔깔대다가도 가끔은 밀려오는 이상한 그리움이 있다. 그건 결핍이 아니라 그냥 그리움이다. 언제든 손 뻗으면 닿을 곳에 있다는 걸 알아서 더 소중한 그런 그리움.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전직장 지인은 'ㅇㅇ이는 자취생인데 집밥 안 그립냐. 집밥 같은 밥 먹으러 가자' 하고는 기사식당으로 날 이끌었다. 모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유명세를 치르고 급기야 큰 건물로 이사간 곳이다. 맛은 그저 그랬다. 집밥은 집에서 먹어야 집밥이지. 우리는 그렇게 말했다. 모 선배는 늘 내게 말한다. '하도 혼자 먹을 때 빵조가리 먹어서 사람이랑 밥 먹을 때만이라도 제대로 된 걸 먹고 싶어'. 그러고는 내 손을 이끌고 메뉴 찾아 삼만리에 나선다. 정말 많이도 걸어다닌다. 그 선배 마음에 쏙 드는 밥집이 나타날 때까지. 대개 그런 경우는 없어서 선배가 지칠 무렵에 들어간 식당에서 선배는 또 실망하고 툴툴댄다. 밉지 않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집밥에 대한 그리움은 누구나 마음 한 켠에 갖고 있는 걸까 따위의 생각을 한다. 단순히 밥 맛이 아니라 집밥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 집밥은 쉽터일 테니까. 사회생활하면서 긴장하고 지치고 풀리고 다시 긴장하는 것의 반복을 겪다 마침내 마주한 home sweete home에서 먹는 오롯이 나를 위한 식사는 엄청난 가치니까. 나는 어린 시절 불만이었다. 어머니가 한 상 가득차려주시는 게 싫었다. 어머니는 새벽부터 일어나서 아빠가 뭐가 예쁘다고 그렇게 정성스레 아침밥을 차렸다. 아빠는 자기 출근해야 하는데 왜 밥 차렸냐며 아기인 것처럼 속상해(?) 하고는 출근하곤 했다. 말이 좋아 속상해서지 화를 내곤 했다. 왜 차려써!!! 같은 식. 본인이 화를 내셔야 어머니가 아침밥을 안 차리실 거라는 믿음이 있으셨던 것 같다. 아침밥을 먹으면 속이 안 좋다고.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니까. 나도 아침밥 안 먹는 사람으로서 그 말을 이해하지만 때론 엄마 모습을 보는 게 속상했다. 지금 와서야 오만이라는 걸 안다. 엄마는 집밥 차리는 게 행복했을 테니까. 뭐. 모성이 위대하다 따위의 구태의연한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고. 어쩌면 그 일을 통해 엄마는 삶의 의미를 억지로 찾아내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요즘에야 한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경력이 단절된 여성으로서, 시대가 허락한 유일한 일. 밥 차리기. 그런 걸 하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아, 이런 생각이 더 오만일까. 우리 어머니처럼 책임감 강한 분에게는 식구들 밥 먹이는 게 더한 사명으로 다가갔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이게 더 합당한 생각일지 모른다.


어쨌든 나는 어머니의 집밥에 대해 어린 시절부터 여러 생각을 한 건 맞는 것 같다. 어머니의 집밥에 관한 수필을 써서 상을 타기도 했다는 게 지금 이 글을 끄적이면서 생각이 나서 말이지. 나는 어린 시절부터 상 모으는 걸 좋아 했다. 그래서 세상에서 내가 영어랑 국어로는 최고인 줄 알았지. 말하기도 그렇고. 우물 안 개구리가 서울에 왔을 때는 깜짝 놀랐고. 현지에서 살다온 친구들 왜 이렇게 많은 건지. 그래서 더 우리 어머니가 대단하다. 어머니는 자기를 오롯이 태워 나를 키워 냈다. 뭐, 아버지의 무력은 막아주기에 우리 어머니의 작은 몸이 역부족이었지만 어쨌든 아빠 혼자서는 나를 절대 이렇게 못 만들었다. 나를 키운 8할은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이지만 애정을 묵묵히 채우곤 했던 어머니가, 본인 최대치로 방어하려 노력했던 어머니가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지.


그래서 돌아와서 집밥이란. 어머니의 새벽과 어머니의 낮과 어머니의 저녁을 오롯이 태웠던 결과물이었단 말이다. 뚝딱 하고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어머니의 고민과 어머니의 선택과 어머니의 노동, 나아가 젊음까지 들어간 대작이었단 말이다. 한 사람이 남에게 그렇게 노동력을 그냥 막 제공하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지. 요즘 같은 시대에선 더더욱. 그래서 나는 돈을 벌면 어머니와 여행을 가고, 뭐 하면 어머니 사다 드리고 그랬는데, 돌아보니 어머니 입장에선 그저 귀여운 수준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가 고른 걸 사드린 것도 아니고 그냥 내 생각에 '엄마는 이걸 좋아하실 거야!' 하고 산 거고, 엄마는 가족이 다 같이 여행갔으면 하는데 내 생각에 '엄마도 혼자 쉬는 시간이 필요하지! 나랑 둘이만 가서 엄마를 억지로 아빠에게서 떨어뜨려 놓아야겠다!' 하고는 결제해버린 것들이니까.


물론 엄마는 당신의 집밥 스토리에 대해 내가 이렇게 써둔 걸 보고 싫어하실 수도 있다.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실 테니까. 어디 말하고 자시고 할 일이 아니라 조용히 혼자 감내하셔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니까.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그래서 나는 우리 어머니처럼 말 안 하는 게 남들도 다 그런 줄 알았다. 불만 있어도 말 않고 부당해도 참으시고 항상 그러셨다. 책임감이 투철하신 분이라 더 그랬을 거다. 나는 그게 모든 사람이 가진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땐 어머니가 지금보다 더 내 세상의 전부니까. 비교값이 많이 생긴 이 사회에서 다시 느끼는데, 우리 어머니는 가장 위대하신 분이시다. '엄마 밥 차리시지 마세요. 그 시간에 아무 것도 하시지 마시고 그냥 쉬세요. 우리 어차피 안 먹고(는 나름의 뻥이었다) 아빠도 매일 저러시는데 뭐 하러 차리세요' 하며 그게 너무 속상하다고 징징대던 고딩 강아미를 키워내신 분이시니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