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나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의 자리를 피하는 편이었다. 이 직종을 택하기 전까지는, 생김새 때문에 오해도 많이 받고 억울한 일도 당했기 때문에 대체로 그냥 웃는 법을 익혀 버리거나 바보인 척 대처했다. 가만히 있어도 무서워 보인다는 것, 가만히 있어도 세 보인다는 것 등. 내 지인들은 그런 얘기를 들으면 네가 뭐가 세? 하는 고마운 사람들이지만, 대체로 일반 대중(?)과 면대면으로 만나면 저런 소리를 들었다. 일반 대중이라기보다는, 또래 아이들. 그래서 나는 또래가 지겹고 싫었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들을 해대는 집단이었으니까. 곁의 친구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이 시선에선 속칭 '센' 친구들이었다. 그 속에선 난 당연 평범했다. 그게 편했고 그들 속에선 스트레스 받을 일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가만히 있었을뿐인데 무섭다 소리를 듣거나 자기들이 눈치본다는 따위의 헛소리를 해대며 유언비어 만드는 자들은 시끄럽고 귀찮았다. 그러니 웃으며 다가가는 일에 익숙해졌는데, 헛소리하는 자들은 여우짓이라느니 황당한 소리를 했다. 그러니 나는 또래보단 어른이 편했다. 곁의 친구들도 성숙한 이들이다. 이런 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천운이라 긍정회로 돌리기 딱 좋다. 외모로 받는 오해는 과거엔 슬펐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모든 건 일장일단이 있으니 이런 걸 타고났으면 장점으로 승화하면 된다고 생각해왔다.
중학교를 올라가면서 살이 부둥부둥 찌고 나는 친구들을 잃었다. 가세가 확 기울었는데, 그것 때문일지 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겉보기엔 별 티는 내지 않았지만 깊은 어둠으로 침잠했고 주변 사람을 다 잃었다. 외모가 달라지면 주변은 한 번에 달라졌다. 속칭 함께 놀며 돌아다니던 애들은 나를 보고 외면했고 나 역시 마치 내 달라진 외모가 내 지독한 죄라도 된듯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편이 갈렸다고 생각했다. 성격이 원체 그런 데 신경쓰지 않아서인지 둔해서인지 뭐 그러든지 말든지 하는 게 컸다. 뚱뚱한 체구는 불이익을 불렀지만 그러든지 말든지 했다. 평생 이렇게 살 것도 아니고 잠깐 그렇게 사는 건데 계속되지 않을 거란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나 보다. 변한 대우들은 내게 당연하게 다가욌다. 상처받지도 않았다. 집에선 맞느라 바빴으니 그런 걸로 상처받을 틈도 없었다. 기울어진 가세 때문에 학교를 멀리 다니고 집에 가서는 하루종일 깨부수는 소리들에 익숙해진 상황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러나 상처를 무의식은 받고 있었던지 흉은 남았다. 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2년 후 나는 지독하게 살을 뺐다. 원래 외모를 되찾으니 친구들이 하나 둘 돌아왔다. 누구들은 너무 양아치가 돼 같이 놀기 싫었고 누구들은 너무 다가와서 내가 오히려 세게 나가는 체 했다. 그냥 당연했다. 외모로 판단당하는 나 자신에게 나는 나 역시 점수를 매겼다. 몇 점이라고 매기겠다고 했다기보다는 그냥 눈치껏 알았다. 다시 돌아왔구나. 하고. 잃었을 땐 슬프지도 않았으니 찾았을 때 기쁘지도 않았다. 그냥 속칭 '그러려니' 했다. 그러면서, 내 썩어 나가는 재능들에 대해 '어어어라' 하는 마음을 품었다. 뉴스에선 강남 얘기를 떠들어댔고 나는 내가 최고였던 분야들에 갑자기 혜성처럼 치고 올라온 몇 명을 보고는 돈의 힘을 어렴풋하게 느꼈다. 하지만 오늘까지도 내가 자부하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스로를 위해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그들로부터 내 재능을 지켜냈다는 것이다. 비켜주지 않았다. 1등 자리를 내주는 건 죽기보다 싫은 일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니 나는 내 뛰어난(?) 언어, 외국어 실력을 십분 발휘해 좋은 대학교를 가겠다는 명분에 시달렸다. 교사는 내게 부모님이 원망스럽다며 아까운 애를 썩힌다는 말 따위를 해댔다. 그 당시엔 칭찬 같아서 기분 좋아 어머니에게 전하니 어머니는 크게 화를 냈다. 이후 나는 1등 명단에 줄곧 있던 내 이름이 어느새 중간으로 내려온 걸 보며 (특상위권 반_사실 다른 이름이지만 너무 티나니까 비스한 이름_ 성적과 등수 명단을 크게 붇이는 일이 과거엔 종종 있었다) 그냥 쓴 걸 삼켰다. 그 때부터였을까. 있는 집 자식들에 대한 불신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있는 집 자식들은 모의고사서 3, 4등급을 수두룩하게 받았다. 나는 단연 늘 1등급이었다. 그럼에도 특상위권 반의 대우는 돈의 순서로 돌아갔다. 언젠가 어머니 모임에 다녀온 어머니가 지독하게 우울해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지금에야 안다. 그 때 특상위권 학부모들은 입시도우미 얘기를 했다는 것. 그들끼리 십시일반 비싼 돈을 넣어 비싼 선생을 사 수시용으로 아이들을 열심히 만들어댔다는 것. 3, 4등급을 받아대며 내게 100점의 비결을 묻고 친한 체 다가오던 그들 일부는 기막히게도 명문대에 진학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니, 그냥 그러려니 했다. 내 가치는 내가 증명하리라. 그렇게 이후 몇 년도 스스로를 위해 열심히 살았다.
있는 집 자식들. 그들은 자신이 가진 게 뭔지 모르고 그저 까불었다. 부모가 해주는 건 당연해 보였다. 부모가 주는 돈으로 부모가 붙여준 학원을 다니며 그러면서 부모에게 성질을 냈다. 나는 마음이 찢어졌다. 왠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싫었다. 학급서 외국어, 언어 시험이 끝나면 내 주위는 언제나 인산인해였다. 두 과목에 있어서 나는 오답을 낸 적이 손에 꼽으니까. 그러면서 특상위권에 가면 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 반에 가면 돈에 따라 자리가 갈렸다. 성적순으로 앉아야 하는 게 맞는데 어느 날 갑자기 섞이고 내 자리를 뺏기기도 했다. 언젠가 한문 선생은 내게 정말 미안하다는 말을 했는데, 그가 유일하게 양심인이었다고, 나는 그 때도, 지금도 어렴풋이 안다. 특상위권반에 가면 심사가 뒤틀렸다. 그건 내 자격지심이었음을 이젠 안다. 내가 이런 걸 누려도 되는지에 대한 의심, 학원을 다니면서 자신들이 특별한 양 구는 이들에 대한 혐오가 스멀스멀 나를 감쌌다. 그래서 그들이 내게 다가오면 나는 피했다. 너네랑 나는 사는 동네가 달라. 같은 척 하지 마. 따위의 것이었다. 난, 내 능력으로 올라왔어. 따위의 것. 오만 혹은 진실.
그러다 결국 미끄러지듯 온 대학서 나는 또 다른 편견을 마주했다. 차가운 외모만 보고 사람들은 헛소리를 해댔다. 나는 남녀 간의 구설수에도 종종 오르는 사람이라 지금에서야 여자대학교를 간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또 지나고 보면 모를 일. 어쨌든 나는 대학을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웃는 습관이 들었다. 웃는상이 됐다. 웃지 않으면 무서운 얼굴. 그러니 나는 웃었고 웃음은 남자들에겐 착각을, 여자들에겐 곁을 내주는 계기가 됐다. 사람들은 나를 정형화된 틀에 넣어두길 좋아했는데, 그걸 모르는 체 하려고 꽤나 웃기게 노력했다. 지금도 그러하다. 외모로 받는 편견에 대해, 나는 좀 더 당당하게 '그래서 썅 어쩌라고. 난 예뻐. 근데 뭐' 따위로 대하자고 노력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난 안 예쁜데 사람들은 왜 구라를 칠까. 내가 만만한가' 따위의 이상한 의심을 품는 것이다. 이 따위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내 스스로 혐오스럽기도 하다. 애니웨이, 나는 웃지 않으면 내 의견을 말할 수 없었다. 왜? 나는 그냥 말하는데 상대는 내 얼굴만 보고 있으니까. 여러 가지로 나는 고통스러워서 그냥 웃으며 착한 사람의 역할을 맡았다. 지독히 착해도 얼굴만 보고 사람들은 오해를 했고 지독히 못된 인간도 얼굴만 보고 감쌌다. 지겨웠다. 하나는 확실했다. 말하는 것보다, 웃는 것이 훨씬 내 사람들을 만드는 데 나은 길이었다.
나는 사람이 싫다. 사람이 싫으면서도 사람의 애정을 갈구하지만 역시나 나는 사람이 싫다. 기자가 되고난 후 비슷한 기운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생각보다 못되지 않아서, 그 착한 롤에만 익숙해서, 당하기만 했다. 그러면서도 내 권리 하나 제대로 못 찾았던 것은, 뒷배가 없다는, 그러니까 속칭 말하는 비빌 언덕이 없다는 것 때문일까. 아니며 내가 지난 세월동안 잃었다 가졌다를 반복하며 알아낸 사람에 대한 불신 때문일까. 나는 사람이 싫다. 사람이 싫으면서 지독히 미우면서 그저 그러려니 몇 년간 그 감정을 잊고 살았다.
어쨌든 살아간다는 건 새로운 희망을 준다. 사람이 싫었던 여자는 살면서 사람이 좋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엿본다. 대개 그 가능성은 비뚤어진 욕망의 대상이 되거나 때론 정말 좋은 친구를 만나는 운좋은 일이다. 그걸 판가름 하는 것은 내 재주가 아니다. 그저 정해진 순리다. 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사람들이 부자인 기반을 당연시해가며 내뱉는 짜증들이 싫다. 내 얼굴을 하고 말했다면 틀림없이 나쁜년이 됐으리라. 그따위 생각을 한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인간이다.
부모의 돈으로 대학원에 다니며 해외 유학을 준비하면서 힘든 체 하는 인간들이 나는 싫다. 그런 축복이 어디 있는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손찌검 한 번 않고 묵묵히 자식을 뒷바라지하는 부모를 욕하는 인간들이 나는 싫다. 그런 부모를 갖는 행운은 당연한 게 아니다. 내 상처를 듣고 그래도 낳아줬잖아 따위의 말을 위로인지 놀림인지 던지는 인간들이 나는 싫다. 애써 말하게 한 후 멕이는 인간들이 나는 싫다. 나의 불행은 당신의 여가거리가 아니다. 그러니 내 불행을 들으려 한 자, 그 책임을 져라. 그 책임은, 별 거 아니다. 잊거나 헛소리하지 말라. 그냥 묻지 않는 게 최선이나 순간의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자, 그 책임을 져라. 그냥 잊고 헛소리 해대지 말라.
고통스러운 감정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과거가 발목잡게 하지 말라는 걸 신념처럼 떠올리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자꾸만 위로 올라갈 때마다 나는 고통스럽다. 매순간 발버둥치며 나를 들키지 않으려 노력한다. 함부로 남을 재단하며 자기 의견이랍시고 개소리하는 인간들이 싫다. 남이 자신에게 해서 싫은 말은 자신도 남에게 안 하면 되지 않을까. 왜 풍기는 분위기나 외모만으로 강하게 보이는 사람에겐 더 강한 말을 해도 된다고 여기는가. 그 사람의 속내를 당신이 아는가.
마지막으로, 기자도 인간이다. 기자 개인에게 사적인 자리서 하는 질문들에 결례가 없는지 잘 살피라. 당신이 기자 전체를 싸잡아 싫다고 욕하는 게 과연 옳은지 생각하라. 당신이 종사하는 직군서 빵꾸 내는 한두 명 때문에 내가 당신 직군 전체를 싸잡아 욕하면 기분이 어때. 그건 결례 아닐까. 관련한 질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기자에겐 유독 당신들, 박한가? 기자들이 정말 권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가? 돈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들은 내가 한 질문이 아니다. 최근 술자리서 만난 젊은이들과의 대화에서 나는 굉장한 충격을 받고 말았다. 젊은이들이란, 후배가 아닌 내 또래를 포함한 나이 언저리 이들을 말한다. 생각나는대로 뱉지 말고, 커뮤니티에서 읽은 걸 자기 의견인 체 말하지 말아라. '텅텅'을 왜 자기 입으로 증명하는가? 관망하는 자여,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면 그냥 관망하며 가만히 있으라. 누구 말처럼, 싸움은 우리가 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