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무섭다'는 건

by 팔로 쓰는 앎Arm

내 앞의 이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내가 굳이 알 필요는 없다. 짐작할 뿐이다. 당신 눈을 보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추측한다. 그게 전부다. 뭐가 진실인지 알 방법도 알아야 할 이유도 대개는 없다. 대부분은, 우리는, 그냥 내 경험에 비춘 데이터를 바탕으로 그 사람의 머릿속을 마음대로 상상하거나 정의하고 만다. 그리고 그건 경우에 따라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맞다면 운이 좋은 거고 틀려도 어쩔 수 없다. 잘못은 아니다.


무언가를 할 때는 그 일이 생겨난 배경, 과정, 결과를 한눈에 봐야 편한 사람이었다. 성격이 급한 건 아니다. 밀어붙일 때를 조절할 뿐이다. 완급. 다른 사람보다 완급들 사이의 기간이 짧은 편이지만 그건 큰 장점이 됐다. 길게 봤을 때 그게 또 좋은 건지 모른다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물론 보내지 못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은 들 수 있더라도, 내 모습을 봤을 때 그 연장선에 있다면 그걸로 됐다.


바보가 되어가는 것만 같다. 다행히 어린 날에 많은 데이터를 축적해둬야 한다는 일념으로 엉뚱하게도 부지런히 움직여 하나씩 꺼내볼 수는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소비되는 양이 더 많을까 두렵다. 아니, 어쩌면 과거엔 새롭게 느껴지던 저장공간들이 이젠 익숙해지거나 그거 정도는 작은 것이어서 더 많은 걸 보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게 되는 우리들 사이의 거리. 거리가 확보되면 마냥 안정되는 거라고 단순히 믿고 의심하지 않았던 데는 나름 어린아이의 데이터가 축적됐다는 걸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그 아이가 깜박 잊고 있었다. 이 어른은 이제 좀처럼 무엇을 어릴 때처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기계적으로 일상을 보내는 탓이기도 하고, 실제 정신이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할 테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보다 더 정신없는 여건에서 몸이 힘든 시간들에서도 정신만은 또렷했던 그 아이가 본다면 많이 놀랄 만큼 이 어른은 정신이 흐릿하다. 물론 해오던 가닥이 있어 그것을 웬만큼은 잘 지키고 있으나 아무래도 그 아이만은 못한 것 같다는 게 요즘 이 어른의 생각이다. 착각인 걸까. 뭐가 맞는지조차 이 이런은 확신하지 못할 지경이다.


이 어른은 사람이 무섭다. 추억은 굳이 헤집지 않고 그 자리에 있을 때 아름답다 하더라도 그걸 좀 헤집고 싶을 때 꺼내볼 수 있게 그대로 있어줬으면 좋겠다. 이 어른은 괜스레 이런 자신의 모습을 사람의 탓으로 돌린다. 이 어른은 굳이 기억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거나, 헌신했던 사람이 그 사실을 모른다거나, 정을 쏟던 사람이 그걸 아무렇지 않게 쳐내는 걸 목도하면서 아마 그냥 매사를 잊기로 결심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 어른은 사람이 무섭다. 나를 변화시키기에 이른 그 사람이 참 무서워졌다.


예전의 아이는 그래서 강해지기로 결심했다. 지금 이 어른은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할까 두렵다. 그 때의 아이도 같은 고민을 했다. 잠시 무언가에 취해 그걸 잊었던 나는, 다시 고민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새로이 나올 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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