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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Nov 25. 2019

아직은, 신화가 되고 싶은 이에 대하여

※ '겨울왕국2' 스포가 가득하니 주의 바랍니다

자꾸만 엘사에게서 힘을 얻는 건, 우리는 가슴 한 켠에 신화가 되고자 하는 열망을 품었기 때문 아닐까. 엘사가 인간으로서 죽고 정령으로서 다시 태어난 겨울왕국2에서조차 나는 아직도, 엘사에게서 힘을 얻는다. 그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모든 걸 잃은 것처럼 보이는 상황서 안나가, 이 어둠을 뚫고 앞으로 다시 나아가겠다고 가진 것 쥐어짜는 모습에도 힘을 다시 얻은 걸 보면, 나는 어린이와 어른 그 어디쯤에 서있는 걸까. 돌아보지도 않던 안나에게서 인간은 어쩌면 저렇게 조금은 부족한 상태서, 결국은 의지할 이들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한 켠에 품어보는 것은, 과거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이리라.


엘사의 마음 속에 들끓는 그것은, 그 누구도 설명할 수 없던 것.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떤 이들은, 그런 목소리를 가슴 한 켠에 품고 있을 테다. 엉뚱한 소리 말고, 자기 안에서 자기에게 하는 소리 말이다. 내게 그것은, 글을 쓰라는 것, 나아가라는 것. 그것이다. 자꾸만 나를 꿈꾸게 하고 나를 밀어내게 하는 모든 소리들은, 내가 만든 게 아니다. 엘사가 현실서 행복해하면서도 귓가에 울리는 소리를 무시하지 못하고, 그 소리에 응한 뒤에 환희를 맞은 것은, 쉬이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비록 그 대가는 죽음이었지만, 엘사는 다시 태어나 더 큰 존재가 됐다. 우리는 누구나 알을 깬다. 아니, 정정하겠다. 군중 속 누군가는 알을 깨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 누군가 속 누군가는 알을 깨낸다. 대개 알이란, 혼자 힘으로 깨내야 하는 것. 밖에서 부리로 깨주었다가는 죽게 마련이다.


엘사가 홀로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 결국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지는 게 엘사의 행복인 이유, 그것이 정해진 운명인 이유. 그런 건 없다. 인간은 자기 쓰임을 다할 때 행복하다. 자기 소명이 뭔지 알고 그것에 전력투구해 행하는 이는 얼마나 복받은 이인가. 그 얼마나 큰 행복인가. 이 짧은 인생에서, 자기 재능을 불살라 뭔가를 만들고는, 그 고된 길에 서서 마침내 한 번 쉬어보는 것. 그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얼마나 소수에게 허락된 고난 끝 열매란 말인가. 아직은 엘사를 보면서 힘을 얻는 내가, '아직은'이란 말을 언제까지고 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냥 마음 속에 그런 생각은 품는 것이다. 아마도 영원히 나는 엘사에게서 힘을 얻으리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맞고 틀림이 아닌 것. 사람은 저마다 성장과정이 다르다. 가진 것도 다르다. 생각도 다른다. 무엇보다, 천성도 다르다. 그러니 머리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 하는 것은 멍청한 일. 내 안의 목소리의 흐름이 온다면 그걸 알아듣고 제대로 파단을 내리는 것도 얼마나 큰 축복인가. 물론 삶이란 때론 그 선택들이 실은 아니었다거나 뭐 달리 괜찮을 수 있었다거나 하는 여지가 있는 듯 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지만 그것은 또 얼마나 해석의 여지들이 들어간 것이겠나. 그러니 나는, 괜한 합리화 말고, 그저 나는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한 번 더 '그러려니' 하고 자꾸만 받아들이는 것이다. 가슴 뛰는 것에 대하여, 무엇하여 나는 길게 생각하는가. 뭐 그리 따질 나이가 되었다고 벌써 주저 앉으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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