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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Nov 29. 2019

놀음들에 대하여

누구나 사정이 있을 것인데. 나는 함부로 말하지 않으려 했다. 기자가 되고파 기자를 꿈꿨지만 검색어 기사나 쓰고 있는 사정들에 대하여. 누군가는 진정 기자가 되고 싶어서 그걸 숙련되는 과정이라 진정으로 여길 거라는 믿음이 마음 한 구석에 아직도 있다. 그리하여 쓰고 싶은 이는 많으나 진정 기자를 뽑는 문은 적은 언론계에 대하여, 그 구조에 대해 돌을 던질 마음도 조금은 있으나, 그 또한 자격을 갖춘 이에게만 응당 허락될 일. 그러니, 인간이여,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그것을 익힌다면 그나마 어른이 되는 데 도움이 되리라. 따위의 생각을 또 다른 마음 한 구석에 품었더랬다.


복잡한 문제다. 기자가 되고 싶은 이는 넘친다. 기자의 역할은 대체 무엇이 되었는가. 누구나 다 '기자'라는 이름을 쉽게 가지는 시대가 된 것은 마음 깊에 슬프고 씁쓸한 일이다. 누구나에 대하여 폄하하자는 것은 아니다. 진골이니 성골이니 하는 말, 정말 싫어한다. 그러나 오호 통재라. 쏟아지는 기사들에 붙여진 무의미한 이름들이여. 시간마다 올라오는 검색어 키워드 기사들이여. 그 기사들에 붙은 인턴의 이름들이여. 아마도 정말 언론인이 되고 싶지만 돈, 경력 따위의 것에 눈물나게 아쉬운 젊은 청춘들은, 그 검색어 기사 하나도 제대로 써보겠다고 오늘을 불태우고 있으리라. 그중에는 정말 자기 곤조대로 멋진 기사를 써내는 이가 있을 수도 있으나, 오호 통재라. 대다수는 선배의 손놀이에 엉망인 결과를 자기 이름으로 떠맡으리라.


그러니 나는 여기에 고함치는 것이다. 인턴 떼고, 1인분의 역할을 해야 하는 '기자' 이름을 오롯이 가지게 된 이들에 대하여. 미안하지만, 신문을 만들고 방송 뉴스를 제작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빼놓고 가겠다. 이것은 차별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작금의 현실이 온라인서 떠들어대는 논란의 재생산과 별반 다를 게 없기 때문이리라. 온라인에 쏟아지는 기사들은, 실체 없는 것들. 그러나 그 실체 없는 것들이 하나 둘 쌓여 기록이 되고 증거가 되어 때로는 종편 프로그램에, 그 영향이 커지면 지상파 프로그램에. 캡처자료로 신빙성 있는 양 나가게 되는 것이다. 이 흐름은, 나는 아는 사람은 다 아니 알아서 거르리라 여겼는데, 웬걸. 언론이란. 미디어란. 참으로 무서운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내가 너무나 간과했음이라.


세상은 다양한 목소리가 채운다. 목소리엔 함부로 가치를 매길 수 없다. 안다. 그러나 정도는 있다. 바른 길은 있다. 누가 바른 길을 정하느냐고. 그렇게 외친다면 초등학교 1학년 때로 돌아가보라. 도덕 교과서 배운다. 거기 나오는 일들에 대하여,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다고 우길 것이라면, 나가라. 당신은 대화의 대상이 아닐 것이니. 가장 기초적인 인간에 대한 기대를 말살하고 하는 대화는,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것일뿐, 대확 아님이라.


상처 입고 날개 꺾인 기자처럼 굴고 있으면서도, 최소한의 자존심은 잃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라고 어려운 직업이다. 쉬운 일이 아니란 말이다. 당장 오늘 하루 할당량을 채워야 하니 아무 기사나 가져다 쓰고, 베껴야 한다면서, 시스템을 탓하는 공허한 말들이, 나는 그저 두렵게만 느껴진다. 마치 자시들이 진정한 명분을 가진 양, 선택권이 없는 듯 굴며 다른 이를 명분도 없이, 이유도 없이 펜으로 죽이는 그 말이, 자신의 하루 벌이를 위해 남을 그저 재단하겠다는 그 말들이 , 얼마나 잔인한가. 시스템이 싫으면 나와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다. 기자라면 말이다. 그건 자기가 회사원이라는 걸 인정하는 말일뿐. 1인의 회사원도 1인의 생각을 가질 것인데, 그렇게 사회가 구리게 굴러가게 내버려 두면서, 오히려 방조하고 힘을 보태면서 그 시스템을 살찌운 것에 대한 변명이 그 시스템이라니. 얼마나 구린 변명이란 말인가.


하루에 할당량이 있으니 기사를 엉망으로 써도 이해해달라. 혹은 발로 뛰는 취재 시간이 부족하다 따위의 것은 자신이 제일 잘 알진대, 어불성설. 대개 그런 자리에 가는 이들은 취재기자의 자격으로 가는 게 아니다. 인터넷 기사 대응반 이른바 '이슈팀' 혹은 '24팀' 따위의 것으로 대응되는 그러한 팀에 속하게 된다는 것에 대하여, 싫으면 박차고 나갈 용기, 가오 따위가 았어야 하는 것이라고, 나는 진정으로 그리 믿는다. 무슨 일을 하는지 뻔히 알면서 가서 들어 앉아놓고서, 발생한 똥들에 대하여, 자기는 이 시스템의 피해자였노라고 말한다면, 그 얼마나 무책임하고 멍청한 대답이란 말인가.


안다. 누구나 피곤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 언제까지도 피가 끓을 수도 없다. 그러나 그런 검색어 기사를 쓰는 게 아니라, 기자가 되고 싶다면, 정말로 괴로워야 하는 것이라고, 나는 아직도 믿고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두렵고 끊임없이 괴로워 힘든 일이 이것이며 초장의 투지가 사라지는 것을 매순간 찬물 끼얹어 참아내야 하는 게 이 직업이란 말이다. 매순간 나를 갉아먹으면서 새로 충전해야 할 것을 찾아다니는 게 이 직업이란 말이다. 작금의 플랫폼 다면화로 '기자' 아닌 기자들이 생겨나는 것들에 대하여, 나는 그것이 과연 시스템 혹은 플랫폼의 탓만 하고 앉아 있는 게 과연 아직은 기계 아닌 인간으로서, 잘 하고 있는 작태들인가 하는 의문이 강하게 들어, 마음으로 고함 한 번 질러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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