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팔로 쓰는 앎Arm Dec 13. 2019

'고맙다'는 말을 할 줄 모르는 마음의 병들에 대하여

기자 일을 하다 보면 웃긴 게 있다. 기자 일이라고 한 건 허세도 뭐 의식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속한 데가 이 동네라는 걸 적는 거다. 아무 의미 없다. 무튼, 선배들은 후배에게 반드시 자신이 돈을 써야 한다. 후배 입장서는 좋다. 후배가 뭔가를 사려 하면 선배들은 버릇없다고 여기거나 예의없다고 뒷말을 해댄다. 싸가지가 없다거나 오바 한다거나. 그건 괜한 말이 아니라 정말 선배들은 고맙게도, 감사하게도 어떤 사명감을 갖고 있다. '후배에겐 내가 사야해' 하는 것 따위의 것. 나 역시 후배들에겐 지갑이 텅텅 열리는 선배다. 어떠한 형태든 후배가 '오늘은 제가 살게요' 하면 말리고 나선다. 그래도 억지로 강요하진 않는다. 그러니까, 화를 내는 정도의 선배는 아니다. 때론 화를 내는 선배가 있으니까, 그 세상을 아는 이들이 오해할까 첨언한다. 어쨌든 그런 융통성(?)쯤은 부릴 줄 아는 선배다. 허허.


무튼간에 돌아와서, 어떤 선배들은 지갑을 열고 그 핑계로 자기 얘기를 하고 그런다. 앞의 만만한 존재에게 회사의 사정을 얘기하고 뒷담화를 한다. 후배 입장서는 돈은 굳지만 귀가 아프다. 속 시끄러운 일이 생기기 쉽다. 그래서 '에이씨, 이깟 밥술 안 먹고 말지' 하다가도 어김없이 불려간다. 뭐 100프로다. 선배가 밥 먹자는데 "못 먹어요" 하는 용기있는 축엔 못 속하니까. 아씨, 누가 90년생이 온대. 기가 막혀서. 그건 사람 차이고 문화 차이다. 사람 천차만별이고 성향도 천차만별이다. 그러면서 이 동네 선배들을 싸잡자니 어쩐지 미안하고 모순적이니, 그냥 내가 만난 어떤 선배들로 한정 짓겠다.


지갑을 여는 걸 굉장한 특권인양 구는 그 선배는, 자신의 생일이나 특별한 날 후배가 건네는 먹을거리, 선물에 단 한 번도 고맙다는 말을 않는다. 오히려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낸다. 어랍쇼 벙찌는 상황이 이어진다. 후배는 억지로 이해하려 한다. 아, 선배가 참 고마운 분이다. 괜찮은 분이다! 그런데, 조금만 비틀어 보면 이런 생각 뒤엔후배를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 무언의 뭔가가 있다. 지갑을 여는 고마운 분에게 할 말은 아니고, 생일 선물이나 카드 드리면 화내는 성격 이상한 선배로 한정해서 말하겠다. 범위가 점점 좁아지네. 그렇다. 나는 이 선배 몇 명에게 아주 질려 죽겠다.


고맙다는 말을 할 줄 모르는 인간은 얼마나 비참한가. 자신의 생일에 파티를 해주고 선물을 줘도 민망함에 '이런 걸 왜 줘' 하고 화를 내고 기분 나빠하는 듯한 액션을 취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찐따다. 그건 "뭘 또 이런 걸 샀어 안 사도 돼~" 정도의 뭐랄까 인사치레 수준이 아니다. 격하게 화를 내는데 보는 이는 경악할뿐. "왜저랲?" 하고 말뿐이다. '저 선배, 얼마나 못 받아봤으면 저런 액션을 취하나' 하고 말이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고 보는 이로서는 기다릴 뿐이다. 하나도 멋있지 않다. 화낼 데가 없어 자기한테 카드 써주는 이에게도 짜증, 메시지 주는 이에게도 짜증, 주는 이에게도 멕이는 답장 따위를 보내는 선배는 억지로 애정을 품고 지켜보지 않는 이상 정 떼기 딱 좋은 대상이다. 말이 좋아 말이지, '감히 니가 나에게 선물 따위를 할 정도로 돈을 번다는 것이냐' 따위의 억지스러운 부정 '가5'는 멋도 없고 구리다. 주고도 짜증이 난다는 거다. 


대체로 선물이란 받는 이도 기쁘지만 주는 이도 기쁘다. 그 사람을 위해 편지나 카드를 고르고 펜을 택해 내용을 쓴다. 선물을 고른다. 아무리 요즘 세상서 농담 삼아 '내가 갖고 싶은 선물을 준다'고는 하지만 그만큼 '내가 갖고 싶을 만큼 멋진 물건'이라는 얘기도 된다. 뭐든 나쁘거나 억지로 비틀어 보면 다 구린 법이다. 고마우면 고맙다고,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아끼면 아낀다고, 좋으면 좋다고 말할 줄 모르는 이들은 이 얼마나 구린가. 나는 그저 오늘도 키보드를 다독이며 미소로 선배를 감싸는 것이다. 에고, 선배. 애정 결핍은 시간 지나면 없어지지 않습니다! 고마우면 고맙다 말하면 될 것을, 비틀어 민망해 하는 과한 찐따스러움에 대하여. 그건 겸손도 미덕도 아닌 그저 갖다 버릴 가5에 불과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악순환인지 선순환인지 나도 몰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