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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Dec 12. 2019

악순환인지 선순환인지 나도 몰라

몰두한다. 전력질주한다. 동분서주한다. 고프다. 가쁘다. 힘들다. 울고 싶다. 그러다 보면 끝이 온다. 그럼 안도를 해야 마땅한데 어쩐지 나는 우울해지고 만다. 그건 대개 주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가만히 침잠하는 것일뿐. 일을 한다. 집안일도 한다. 얏고들을 다닌다.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집에 온다. 청소를 한다. 여기도 닦고 저기도 닦는다. 일을 한다. 전화를 한다. 사람들을 스친다. 지친다. 마른 걸레 짜듯 하루들을 보낸다. 때론 일주일이 하루 같고 한 달이 하루 같다. 눈코 뜰 새 없다. 정신이 없어서 뭐 하고 있는지 가다듬어야 한다. 중간에 일부러 숨을 고르지 않으면 그저 달리기만 한다. 숨가쁘게 달리다 진이 빠져서 녹초가 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또 힘들다. 몸이 아프다. 약을 먹는다. 진이 빠진다. 기분은 맑다. 이상하게 맑은 기분은, 잠깐이라도 시간적 여유가 생기는 순간 바닥으로 쿵 하고 내려 앉는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부유하는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 마감에 정신없어 고통받다가도 그게 끝나 버리면 그저 공허해진다. 공허함이 너무 커서는 마감으로 비워낸 내 모든 것을 채울 길이 없어 일기장에 도닥거린다. 일기장에 일기를 쓰고 나면, 기분이 나아질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어쩐지 고요한 나의 대부분의 상태보다도, 우울이 찾은 순간 일기를 찾아 기록하기 때문에, 그 어둠이 싫어서일지도 모른다. 어둠이라 부를 수나 있을까. 침잠했던 기록들은 두 번 다시 거들떠 보지 않는다. 한 번 써내려가면 그만. 그냥 떠다니는 우울들은 그저 일기장에 넣어 버리고는 문을 잠근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아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나는 분명 감사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 나아짐을 위해 매순간 발버둥쳐왔던 기록들과, 현상 유지를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나에게, 가끔은 진절머리가 나기도, 가끔은 애틋해 쓰다듬고 싶기도 해서, 살면서 꼭 한 번씩은 우울에 침잠하고 만다. 한 편으로는 알고 있다. 지금이 어쩌면 가장 행복한 시기일지도 모른다. 이게 현실이 될까봐 나는 고군분투한다. 과거의 내가 그랬듯, 오직 나아지는 것만을 목적으로 나는 오늘을 투자하고 달린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어떠한 몰입에 빠져 보내다 보면, 또 나아진 내일을 받아 든다. 그러면, 한 번쯤 또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 직후 우울이 올지언정, 그건 꽤나 사치스럽고 값비싼 행복의 값이리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한 이 공간을, 자꾸만 나는 의식적으로 되새긴다. 사랑하는 물건들, 사랑하는 기록들, 나의 손길이 닿은 것들로 오롯이 채운, 나를 둘러싼 이 벽면들을, 나는 꽤나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매일을 여행하듯 살자는 마음으로, 쓸데없이 여행을 다니며 돈과 체력을 쓸 필요 없이, 매일을 새롭게 살아 내면서 어떠한 강제 행복 혹은 새로움 따위를 내게서 주문해 내는 것이다.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은 나란 인간에 대하여, 자꾸만 가슴에 할 말이 차오르면 일기장에 써야 하는 인간이 된 나라는 사람에 대하여. 과거와 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이 꽤나 내 마음에 든다는 것에 대하여. 다 가질 순 없다. 나는 지금 충분히 행복하다. 그걸 인정한 나는, 앞으로 더 멋지게 날아오를 일만 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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