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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Dec 11. 2019

진영놀이에 대한 환멸

이 일을 하면서 가장 마음이 이상해질 때는 어설픈 이를 만날 때다. 자신이 믿는 것이 최고라 생각하며 어설프게 걸은 길을 토대로 모든 것을 단정 지으려는 시도들은 대체로 어설픈 이들에게서 나온다. 한 분야를 깊이 파는 이들은 의심이 많다. 자신이 확신하는 것을 넘어서 다른 것을 보기 때문에 호기심도 많고 신중하다. 함부로 말을 하려 하지 않거나 인터뷰에 응하지 않겠다는 건 어쩌면 그러한 숭고한 의구심들 덕이다. 언제나 어디서나, 말을 아끼는 자들은, 대체로 현명하다. 의뭉스러운 것 말고 정말 말을 아끼는 자들 말이다.


어설프게 겪은 것, 잠깐 알았던 것을 바탕으로 한 분야를 다 안다는 듯 말을 해대는 인간들에게는 진절머리가 난다. 그러니까, 인류애를 가지려고 그의 생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려 하면 토악질이 난다. 그러한 시선에는 기본적으로 자기 최우선주의, 자기 시선 옳음주의 따위의 경박한 이기주의가 깔려 있다. 그 길을 제대로 걸어 보지도 않았으면서, 그 길 곁에서 어설프게 지켜 보았다거나 발을 담갔다가 힘드니 뺐다는 것 등으로 그 길의 과정과 끝을 함부로 단정 짓는다. 대개 SNS에 능하다.


확증편향. SNS 시대는 무서운 곳이다. 온라인에 올라오는 글들은 진정한 여론인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 나 역시 댓글 따위 한 번 달아 보지 않았던 1인으로서, 댓글들에 기반해 인간 생각의 대세를 논하는 게 과연 옳은가에 대한 근본적 물음이 있다. 나아가, 확증편향이 습관이 되어버린 한 인간 혹은 기타 등등의 채널 따위서 여론을 조사하고 자신의 오류 투성이 주장을 내놓고 같은 의견이 줄줄 달린 게시물 따위를 보면서 자위하는 행위는, 대체 무엇을 위함인가.


독자들이 똑똑해지고 있고 진영 논리를 가리는 눈을 점점 터득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건 꽤 세상을 좋게 바라 본 오해일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무섭다기 보다는, 당연한 것일까. 인간은 제 입맛대로 해석하기 마련이며 때로 눈 앞에 사실을 가져다 두어도 그걸 둘러 싸고 자기 진영에 맞게 요리해 대려 하는 것이, 약자든 강자든 그 누구를 가리지 않고 발현되는 인간의 본질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갈 곳 잃은 선의와 성실들에 대하여, 그만 아득해지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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