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쇼핑

by 팔로 쓰는 앎Arm

여행을 다녀오면 사진이 남는다. 집에서 쉬면 돈이 남는다. 현실적 자취생은 후자를 선택한다. 손에 잡히지 않을 구름 같은 여행은 먼 나라 얘기다. 칩거하면서 평소 사고 싶었던 걸 고른다. 새 옷은 왜 자꾸 필요한 건지. 화장품은 왜 떨어지는 건지. 뭐든 왜 한 번에 똑 떨어지는 건지. 세제도 사야 하네. 자취생은 실실 웃는다. 아싸. 여행 갈 돈으로 살 거 짱 많아. 예! 기분이 좋다. 자취생은 여행보다는 집에서 필요한 걸 사고 몸을 돌보는 게 좋다. 아싸라비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꽤나 좋다. 밥 안 먹어도 배부르고 약도 꼬박꼬박 챙겨 먹을 만큼 의지가 강해진다. 기분 최고다!


여행 한 번 안 가면 2주 살 돈이 굳는다. 평소 사고 싶었던 옷도 살 수 있다. 자취생은 직업 특성상 옷, 화장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갖춰야 하는 직업이라 기쁘고 아주 가끔씩! 손에 꼽을 만큼! 피곤하다. 대개 행복할 일밖에 없는 이 자취생은 다가오는 연휴가 행복하다. 일은 끊임없이 해야할 테지만 그래도! 여행을 안 가니! 돈을 벌었다!는 착각을 할 수 있다. 살면서 스스로를 행복하게 속이는 일에 익숙한 자취생은 합리화의 달인이다. 부정적인 건 자취생을 담금질할 시련! 갈등일뿐! 그까짓 거 금방 극복하고 절정 결말까지 행복하게 달릴 거라는 걸 자취생은 아주 잘 알고 있다. 씨익 웃어버릴 수 있는 건 그 이유다.


자취생은 요즘 영양제를 열심히! 챙겨 먹는다. 아픈 것도 싫고 내 몸 하나 돌보는 것 소홀히 하기 싫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들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자취생의 든든한 뒷배는 자취생 자신! 그러니 소중한 몸이 아파선 안 된다. 작년보다 덜 추운 겨울이 반가운 건 그 때문이다. 겨울만 되면 아프던 자취생은 올 겨울은 영양제를 꼬박 꼬박 먹고 아프기 전 미리 약을 먹은 덕분에 그럭저럭 잘 견뎌내고 있다. 때로 통곡하는 우울의 시간이 오지만 얼른 병원도 가고 약도 먹는다. 의사 선생님 말씀을 열심히 듣는다. 그것만큼 효율적이고 쉬운 일이 없다는 게 자취생의 설명이다.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했는데 몸이 그대로 건강해질 때! 그것만한 축복이 어디 있느냐.


자취생은 끊임없이 방바닥을 쓸고 닦는다. 누구 하나 보여줄 이 없는 방을 쓸고 닦고 아끼는 건 자취생이 스스로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일 때문에 힘들다고는 하지만 실은 일을 사랑하고 때로 일을 너무 쉽게 한다는 오해까지 받는 자취생은 행복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다. 자취생은 늘 생각한다. 축복받았노라고. 곁에서 누군가 계속 지켜주는 기분이 든다고. 모든 건 정해져 있다고. 자취생은 늘 행복해서는 때로 이유없이 행복하지 않은 툴툴이들을 만나면 깜짝 놀라서 일기장에 흩뿌린다. 부정적인 감정을 가슴에 담기 싫은 자취생은 일기장에 그렇게 말들을 흩뿌리고는 통통 튀어 제자리로 간다. 그렇게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자취생은 일기를 그만 쓸 생각을 하다가 일기를 기다리는 이와 일기로 뭐를 해보자는 이와 등등을 생각하며 또 행복해 한다. 별 것 아닌 자취생의 일상이 쌓여 기록이 되고 누군가 보며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 자취생은 이상하다. 자취생은 그러면서 생각하기를 나쁜 얘기만 썼는데 괜찮으시려나 하는 것이다. 왜 구독자가 생겨나는 건지 왜 제안들이 들어오는 건지 자취생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자취생이 보기에 그의 일기에 가치가 있는 글은 단 하나도 없어서 자취생은 그냥 어리둥절해서는 키보드를 도닥여 보는 것이다. 아무튼, 자취생을 기쁘게 하는 건 쇼핑이라 이번 연휴에도 자취생은 여행 따위 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는 물건의 숲에서 웃어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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