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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Jul 13. 2016

'모두에게 다른' 공간과 시간

같은 시간을 남들보다 좀 더 가치 있게 누리고 싶었다. 단 한 순간도 흘러가는 시간을 그냥 보내버리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러고 나면 녹초가 되고 잠깐 쉬면 그만이었다. 다른 건 바랄 게 없었다. 지금 하는 투자가 가치 있고, 내 미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확신했다. 이제 나이가 좀 들어서인지 여러 가지 다른 길이 보인다. 내가 그때 낭비라 생각했던 관계가 어쩌면 내가 더 성장할 기회를 줬을지 모르고, 저 길로 왜 가냐 싶었던 누군가의 선택이 그에게는 행복한 인생을 열어주는 최선이었다. 내 길을 후회하진 않는다. 난 매 순간 최선을 선택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치열한 고민을 거쳤다.


치열한 고민.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그만두는 것인 줄 알았다. 아니, 적어도 그 고민이 수월해질 줄 알았다. 알게 된 건 고민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과 그만둘 수도 없다는 거다. 그리고, 다른 길도 있었다는 거다. 뭐가 그리 나 홀로 확신이 뚜렷하다고 고고하게 걸어왔었나 하다가도, 그럴 수밖에 없었고 그게 참 행복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그냥 혼자 다시 생각을 잠가버린다. 잘은 몰라도 나는 아마 영원히 고민하지 않을까? 고민을 멈추고 싶어 단 한 번 해본 과거의 어떤 선택을 내가 이렇게도 자꾸 생각하게 되는 건 아마도 그랬던 적이 별로 없어서일 테다.


같은 공간에서 삶을 살아도 제각각 다른 환경에 처한다. 그건 성별, 그 사람이 경력, 뭐 등등. 그런 사소해 보이거나 그 사람이 갖춘 것들을 남이 보고 평가해 가하는 외부 자극이다. 그런 외부 자극을 여러 차례 격하게 겪었고,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겼다. 그럼에도 이렇게 힘든데, 그것마저 없었다면 참으로 힘들었겠구나 한다. 그러다가도, 아니면 어쩌면, 남들은 겪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는 다소 알 수 없는 생각으로 그 일들이 모두 없었다면 좀 더 응어리 같은 건 없는, 고민 깊이도 얕은 삶을 살아가진 않았을까 하는 건방을 떨어본다.


때론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가장 좋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사실 고백하자면, 자주 한다. 맞다. 나 사실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럼에도 그러지 못한다. 그러지 않는다. 그게 내 미래에 줄 선물이 별로 없다는 걸 알아서다. 그냥 가만히 생각도 잠그고 눈 앞에 둔 단 것들만 찾아 먹으며 편하게 지낼 수도 있다. 사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 시선에선 지독히 쓸데없는 고민에 천착해 내 젊음을 자꾸만 갉아먹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이건 어려서 할 수 있는 고민이라 특권일지도 모른다. 혼란스럽다. 나는 자꾸 확신이 흐려져만 가는 약해빠진 인간이 되어버릴까 너무 두렵다. 그리고 더 두려운 건, 그걸 인지하지 못할까 하는 거다. 그래서 자꾸만 이렇게 나를 쥐어짜며 기억하라고 당부하는 걸지도 모른다.


세상엔 많은 길이 있고 어디에도 '맞는 길'은 없다는 걸 조금이나마 알거나, 혹은 이미 그것을 누렸기에 다른 것들도 그냥 한 번 쓱 보며 '그래 저것도 좋지'하는 오만일지 모르겠어도, 나는 그냥 예전과는 좀 달라졌다. 맞다. 이건 생각이 변한 거라고 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 내가 늘 하고 싶던 '프레임의 확장'인지는 모르겠다. 뭐든 단언할 순 없다. 그냥 나는 내가 같은 시간 속에서 같은 공간에 있는 저 이와 다른 무궁무진한 세계를 향해 꿈을 꾸겠다 생각했던 나를 잃지도, 존중하는 일을 멈추지도 않았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교환학생을 가거나 해외연수를 갈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하지만 그건 꼭 필요한 일은 아니다. 난 불필요한 공간과 시간은 거부했다. 목표가 뚜렷했고, 그걸 위해 과정을 간소화하고 싶었다. 그래서 시간과 돈을 벌었다. 기회비용이다. 거기 가지 않는 대가, 혹은 거기 갈 생각 자체를 아예 않았던 덕이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교환학생을 갈 수 있다고? 아서라. 우리 이제 순진한 나이가 아니다.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별 것 아니지만, 내가 당신이 후배들에게 조언이랍시고 하는 얘기를 들으며 웃을 수 없었던 이유다. 후배들은 바보인가. 당신의 무책임한 말 한 마디에 상처 입을 이는 분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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