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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May 21. 2016

우린 서로 잘 몰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상대를 단정하는 건 위험하다. 사람들은 때로 상대의 단면을 보고 그것만을 확장해 기억한다. 그리고 단정한다. 난 그게 싫다. 한 사람은 여러 면을 가졌고, 각자가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가 있는 환경이 그땐 어디였는지. 그에 따라 그 사람은 충분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본질은 같겠지만, 그도 아마 그의 진짜 모습을 모를 거다.


난 다른 사람의 꿈을 함부로 단정하기 전에 스스로를 먼저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건 할 만한 것인지에 관한 것들을 대충은 그려두고 있어야 한다. 대충이라 함은, 절대 그 한계를 미리 생각해둘 필요는 없다는 것에서 나온 말이다. 미래의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 자신의 성장 가능성을 미리 좁혀둘 이유는 없다. 다만 현실의 꿈을 설정하는 데 있어 적당한 현실감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를 테면 이런 정도다. 학창 시절 수학만 빼면 다 잘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면, 그리고, 이게 더 중요한데, 수학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겠고 너무나 괴롭다면, 수를 다루는 진로를 선택하는 건 당연히 심사숙고할 문제다. 물론 그럴 생각조차 들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 밖의 다른 일들, 예컨대, 글을 쓰거나 무언가를 만든다거나 하는 창조적인 일들. 무수히 많은 선택지로 시선을 돌려야 하는 편이 더 현실적이며 나에게도 행복한 선택이다.


'현실적'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생각보다 팍팍한 것 같은데, 결론은 그냥 하고픈 걸 해야 한다는 거다. 그 일을 하는 데 있어 타인의 시선은 요즘 말로 '일(1)도 중요하지 않'다. 물론 자기 역할은 수행하고, 기본적인 일들은 다 하는 걸 전제로 한 거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더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걸 지향하는 편이라, 당신이 꿈을 꾸는 데 지지를 보내기보다는 다른 말을 할 가능성이 더 높다. 그건 가볍게 흘려들으면 될 일이다.


주변에 꿈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원래 많았다면 "운이 좋아서"다. 운이 좋아서, 내 주변엔 같은 길을 지망하는 사람들, 혹은 그저 무얼 하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린 어떤 운명공동체 같다. 그들이 잘 되면 나도 정말 좋고, 그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무기력하다가도 그들과 이야기하고 나면 힘이 솟는다. 우리 관계를 유지하려면 우린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 서로 힘이 되기까지 우린 같은 시간을 공유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모습을 봤다. 길을 가는 데에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는 걸 배웠다.


단순히 어떤 공간에 오래 있었다는 이유로, 먼저 밟았다는 이유로 타인을 평가하는 건 어리석다. 그가 어디에서 온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크고 작은 선택들로 이 곳에서 나와 마주하게 된 것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당신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내 지나온 궤적에 대해 알 길은 묘연하다. 당신은 그저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추측은 당신이 살아온 배경에 기초한 것일 거다.


우리가 같은 공간서 만나게 된 건 분명 기적 같은 일이다. 그 많은 사람들 중 만났기 때문이다. 세상이 좁고 돌고 돌다, 사실 거기가 거기다 보니 만나게 된 게 사실일지도 모른다. 비약하면, 우리가 만난 건 필연일 수도 있다. 작은 우연들이 만들어낸 필연이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아주 잘 알기 전까지는, 당신 개인이 가진 꿈, 당신의 성향 등에 대해 함부로 말하려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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