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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Sep 16. 2019

우린 다 금수저인걸?

※ 친절하지 않은 글입니다. 제 브런치는 개인 일기장이라는 점 감안하시면 좋습니다.


아픔의 정도는 개인마다 다르다. 그러니 누군가는 어떤 소리를 듣고 '그게 뭐 별 건가' 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시끄럽다' 정도로 여길 것이다. 또한 아픔이란 것은 잔인하여 소리내 말할수록 덜어진다기보다는, 오히려 아픔을 찌르는 일을 늘리는 것일 진대, 그러니 입을 다무는 것이 여러 모로 좋음이라.


라떼는 말이야... 필자는 대학 시절 대외활동을 여러 개 하면서도 봉사활동을 했으며 아르바이트도 했다. 시간은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관대하다.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 시간은 많은 가능성을 준다. 시간은 잔인하지만, 자신에게 찰거머리처럼 붙은 이에게 때론 관대하게 테트리스 성공 삶을 제공하기도 한다.


필자는 '레알' 첫 차 타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다녔고 그러고나서는 스터디를 갔다. 필자의 하루는 참 길었는데, 필자는 그 속에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매일 같이 느꼈으니 변태거나 변태거나...는 농담이고 그런 걸 선천적으로 좋아하는 것이라고 일단 정리하고 넘어가겠다.


고로 필자는 '90년생이 온다' 따위를 읽은 분들이 지정한 '요즘 아이'에 속하는 나이면서도 그 일부 독자님들 기준에는 '요즘 아이'스럽지 않은 삶을 살아왔는데, 그렇기에 '라떼는 말이야' 뒤에 숨어 '아르바이트 때문에 힘든 젊은이들' 따위의 말에 1도 공감하지 못하겠는 것이다. 문제의식의 근원은 그게 아니지 않은가.


당장 입을 정장 한 벌이 없고 당장 먹을 식량이 없으며 당장 하루 살 벌이를 걱정해본 입장서, 그것은 '아르바이트하느라 우리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 아르바이트라는 노오력을 해봤어?!' 따위의 표면적인, 오해를 살 수 있는 표현이 아니라, 근본을 지적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그런, 이중부정 쓸만큼 강조해 묻고 싶은, 그런 게 아니냐는 말이다.


나아가, 부모 덕에 교환학생, 어학연수 다녀왔으면 그냥 인정해라. 뭐가 그리 아쉽고 억울해서 '그래도 내가 아르바이트해서 보탰다', '난 가기 싫었는데 가라고 해서 갔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아르바이트해서 보탰다.' 따위의 말을 하는 건가. 님들이 서빙 아르바이트 두어 달 해서 어떻게 수천만원을 한 번에 띡 모아. '할말하않' '안물안궁'이다 '증말'. 가만히 듣는 이들이 진짜 님의 말을 믿고 '아휴, 저 님은 참 힘들게 살았구나' 할까. 뻔히 다 보이는 대화들이 지겹다.


돌아와서, 금수저는 부럽고 다이아몬드수저도 부럽지만, 이어령 선생님 말씀을 기반 삼아, 우리에겐 체내된 다른 DNA가 있지 않은가? 우리는 죽을 만큼 노오력해내고도 하루를 기똥차게 살아갈 수 있는 힘들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부당한 걸 찾아내고 그걸 지적질할 수 있는 것도, 보통 예민하지 않으면 못하는 일이다. 그것도 능력이란 말이다.


그럼 그 힘을 '힘들어요 엉엉'에 쓰는 것보다는 다른 데 돌려,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그 분야를 공부하고, 뭔가를 해낼 수 있는 직업을 가진 후에야 본색을 드러내고(?) 이전부터 문제의식 가졌던 그것을, 실전에 나서 바꿔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게 필자의 '라떼는 말이야 웅앵웅'이란 말이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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