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는 연습

by 팔로 쓰는 앎Arm

"'굿윌헌팅' 봤어?" 그가 물었다. "오빠. 굿윌헌팅 놀이 하려고 그러지." 나는 웃었다. 그는 따라 웃으며 말했다. "아미 잘못이 아니야. 알겠어?" 생애 두 번째 들은 말이었다. 나는 웃었다. 응 알겠어 하고 웃음 섞인 대답을 하고는 왁자지껄하게 웃었다. 정색하고 답하는 건 오그라들고 알겠다고 진지하게 말하기도 그렇고 아무튼 웃었다. 처음 그 말을 누군가에게서 들었을 때 나는 울다가 웃다가 했다. 진지해 보이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허무한 거였나 싶어서, 상대가 이걸로 나를 깔보지 않을까 싶어서, 이런 거에 쿨하게 대하지 않으면 단점으로 삼아 뒤에서 다른 말할까 싶어서. 나는 생각이 많은 인간이다. 생각이 갈래갈래 뻣어나가 예측을 하고 눈치가 빠르다. 눈치 빠르다는 말을 귀에 인이 배기도록 듣고 나니 그제야 내가 남들과 조금 다르다 혹은 내가 남들보다 눈치가 빠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인간이다. 눈치가 정말 빠른 사람은 눈치빠른 것도 티 안 나게 한다는 말을 따라 한동안 연기를 해봤지만 알 사람은 알아챘다. 그럼 고맙다가 뿌듯하다가 웃기다가 내 자신이 어이없어 또 웃었다.


근래의 나는 허덕이는 일상을 살았다. 바빴다고 자부하던(?) 일상에 바쁨을 2L 추가했다. 잠을 잘 못자니 그 시간에 다른 걸 하자고 뭔가를 시작했고, 사랑도 시작했다. 뭐 하나 허투루 하기 싫어서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아팠던 몸이 작작하라고 소리를 지를 때면 멈추는 척하다가 진정이 된 듯하면 다시 일어나 일을 했다. 병원에 일주일에 세 번 오라고 하면 한 번 간 걸로 위안 삼았다. 2주에 한 번 가도 다행이었다. 한 달에 한 번 가거나 안 가거나 하다가 근래 어딜 다녀온 취재 이후 몸이 덜덜 떨어서 내 발로 멀리까지 병원을 찾아갔다. 몸이 아프니 덜컥 든 마음은, 나 갈 길이 먼데, 내 동반자, 내가 유일하게 의지할 내 자신이 고장나버리면, 이를 어쩌나 하는 거였다. 이 아이가 다치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정말로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갈 길이 멀고 하고싶은 게 너무 많은데, 벌써 고장난 것 때문에 아픈 일이 생기니, 나는 일상을 영위해 나가면서 억지로 병원을 끼워 넣었다. 그리고는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 일을 나가고 했다. 참을 수 없어질 지경이 되자 나는 보호대를 차고 다니며 일을 하고 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으로 사랑하는 수영, 목욕탕을 갈 수 없다는 무언의 제한, 어딜 가나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니니 두 배로 막히는 숨이 하나씩 내가 받는 압박감에 묘한 압박을 더해 주었나 보다. 재택근무하는 직업이 아니며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 에너지를 끌어내 한층 밝은 척 해야 하니, 에너지는 소모될 뿐 차오를 기세를 안 보였다.


아프다 아프다 하면 아프고 우울하다 우울하다 하면 우울해지는 게 인지상정. 나는 기쁘다 기쁘다 힘들지 않다 힘들지 않다로 그간의 상처들을 막고 있었다. 원인이 뭔지 아는데 그걸 정면돌파할 용기는 없으니 다른 걸 열심히 해대며 몸을 고갈시켰다. 그렇게 허덕이다 보니 몸도 정신도 아작이 나서는 근래의 나는 정말 '허덕인다'. '남들 다 그렇게 사는 건데?' 하고 해가 진 밤 아픈 몸을 부여잡고 울면서 나는 나를 위로해야 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모이지 않는 돈에 대해, 나는 '돈이 목표인 인생은 구리잖아' 하고 언론인을 택했던 과거의 어린 나를 생각하며, '이런 게 눈에 들어오다니. 혼자 살다보니 생활인이 되긴 했나봐' 하고는 코를 쓱 훔치고 말았다. 그렇게 적금을 붓고 안 쓰겠다고 용을 써도 돈은 잘 모이지 않았다. 그래서 싫다 어쩌구는 아니고, 그냥 순박한 초심을 의심조차 하지 않고 지키는 일에 대해 난생처음 코를 쓱 훔칠 정도로 한 번은 생각했다는 게 구려서, 나는 인정도 하고 싶지 않았다. 노동 행위는 돈을 받아야 정당한 거 아는데, 돈을 받는 게 노동 행위에 비해 한없이 낮게 책정되어 있다는 거 아는데, 그런 거 생각하는 구린 인간이 되기 싫다는 게 초심이었는데, 그 자체가 틀린 생각이었나 하다가, 그냥 구리다고 덮고 만다. 그게 속편했다.


돌아와서, 5월 말이 되자 나는 많이 아팠다. 이유없이 나자빠져서는 꾸역꾸역 살아내는데 보람 따위는 찾을 수 없어 많이 고통스러웠다. 보람이야 인생에서 만들면 만들어지는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으로서, 코로나19 이후 어쨌거나 손발 잡혀 할 수 없는 것 혹은 하더라도 신경을 무척이나 써야 하는 일이 생기고 나니 미칠 지경이었다. 남의 일이지만 동선 공개들은 보면서 스트레스였고, 알림 문자에는 왜 걸린 사람의 나이와 성별을 알려주다 말다 할까 하다가, 그것 또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거겠지 하고는 이해하고 말았다. 알림 문자를 보내는 담당 공무원이 참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우리 모두 참 힘들겠다고 생각하다가, 아무 일 안 하는 일부 회사 구성원을 보면 어이없다가, 또 그런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는 거 알면서 새삼 왜 그러냐고 자신에게 말하거나 했다. 혼란스러웠다. 나는 그렇게 6월을 맞았다. 기뻤다.


'2020년이 와주다니 정말 행복하다. 살아 남았다' 하며 기뻐했던 그런 마음으로 '반년이 드디어 갔다니 행복하다' 했다. 살아갈수록 인생이 힘들 거라는 말에 '헉'하다가 어른이 되어가는 무게가 생각보다 너무 힘들다고 '헉'하다가 '그만 내려놓으라'는 말에 '내려놓아도 되는 건가' 그게 맞는 건가 의구심이 더 크게 들어 '아직 내 야망이 더 커서, 나는 흘러가는대로 살아갈 뿐인데, 그 흘러감이 시키는 일을 지금 당장 내가 하지 못하고 있어서, 고통스러운 거구나' 하다가 만다. 뭐 했다고 벌써 내려놓으니 마니 하니 너. 나는 그렇게 아픈 몸을 감싸안고 발을 동동 구른다. 끝나지 않는 불안을 안고 서서는 어찌할 바를 모르니 뭐든 한다. 뭐든 해내던 일은 내게 잠깐의 위안들과, 쌓아놓고 보니 멋져진 커리어 따위를 주었으며, 나는 어쨌든 성장했지만, 나는 안다. 나는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 사랑한다고 떠들어대면서도 '너 더 잘할 수 있는 애가 이게 뭐야', '너 그 정도의 재능이 있는 거 아는데 왜 다른 일 한다고 그걸 썩히는 거야' 하면서 나는 그 욕심 때문에 온갖 부조리 견디느라 녹초가 된 애를 그냥 멱살잡고 끌고 가고 있다. 그러다 어디로 가게 될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그게 최선이라고 믿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