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방점이 '일'에 찍히면 먹는 행위도 부담스럽다
몰아치던 일들이 잠시 끝났다. 오늘 저녁, 한 번의 여유. 기다렸다는듯 공허함이 밀려왔다. 과업 몇 개를 달성하고나자마자 공허했다. 긴장이 풀리자 근육통이 소리를 질렀고 뒷골이 당겼다. 혼자 집에 가서 자야지. 결심을 하고는 집에 왔다. 그렇게 잠을 잤다. 얼마 못 자다 깬다. 꿈을 하도 꿔대서 나는 자다 깨다 한다. 음악도 들리고 색도 화려하고 어쩔 땐 가위도 눌리고. 해서 깰 수밖에 없다. 꿈 속에서도 뭔가에 계속 짓눌려 쫓긴다. 요즘 잠을 비교적 잘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가졌는데, 실은 잠에 들면 나는 온갖 압박에 시달려 가위에 눌리거나 신경이 곤두서 깨거나 그런다. 늘 그런 꿈을 꿔서 익숙한데, 그러니 나를 잘 알기 때문에, 죽은 듯이 잘 수 없을 것 같으니 술을 사왔다.
꼬르륵거리는 일이 성가시고 역겹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무겁게 다가온다. 할 일이 산더미라 쫓기다가도 한 번은 연료를 넣어줘야 하니 그 행위가 부담스럽고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이거 하나 안 먹으면 얼마를 아낄 수 있고, 이거 하나 안 먹으면 얼마나 빠질 수 있고를 아니, 그냥 먹기 싫어서는 버티다가, 꼬르륵거려 머리가 안 돌아가면 뭘 넣는다. 먹는 행위는 기쁘고 충만하며 복이지만 가끔은 참 성가시다는 위험한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할 게 너무 많으니 그것조차 과업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는 거다. 먹고 살려고 옷을 입고 편의점에 가서 한 끼 대용 삼각김밥이나 주전부리를 사올 때면, 가끔은 뿌듯하기도, 웃길 때도 있다. 바쁘다고 허덕이다가 꼬르륵 소리에 움직인 스스로가 웃겨서도 그렇고, 그냥 그렇다. 그런 거 웃겨 하면 안 되는데, 왜 웃겨 해. 점점 고쳐나가야지. 아니 뭘 고쳐. 가끔 웃어 그냥.
상처받지 않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쿨한 척, 다들 겪는 일 겪으니 별 거 아닌 어른처럼 넘기는 척. 그렇게 살다보면 체해서 술이 간절해질 때가 있다. 빈 속에 먹으면 이제 아플 나이니 이것저것 사온다. 육포 같은 거 말이다. 그걸 씹고 있으면 그나마 허기가 가신다. 허기라는 건, 사실 물만 몇 잔 마셔도 가시기 마련이라, 그런 방법을 종종 쓰다가, 그게 끝발 먹히지 않으면 뭘 씹거나 그런다. 먹으면 체하고 체하면 고통스럽고 안 먹으면 힘들고 그럼 아프고. 그러니 적정선을 지켜야지. 인간이 중간이 어렵댔다. 삼시세끼 잘 먹고 잘자는 게 얼마나 큰 복이며 부유의 상징인지 나는 근래 깨달아 가면서, 그 복 아무렇지 않다고, 안 가져도 된다고 했던 나를 보고, 그냥 어쩔 수 없다고, 그렇게 살고 있다.
나를 누르는 긴장은 금세 사라지질 않는다. 언제 어디서 연락이 올지 모르니 나는 그냥 계속 긴장 상태다. 어디서 누구의 비위를 거스를지, 을중의 을인 취재기자의 현실을 모르고 자꾸 돈을 달라는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달래야 할지, 나는 그냥 다 모르겠다. 갈피를 잃어버렸다. 갑자기 오는 연락들, 힘들다는 말들에 나는 그냥 웃으면서 대해 주다가, 긴장이 풀리면 또 미치겠다가, 연락들에는 또 바짝 긴장해서 연기를 하며 마냥 밝은 척을 하다가, 그런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그러면서 뭐가 힘드냐고 하면 뭐 할 말 없다.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게 핑계는 되려나. 나는 그냥 예의를 지키고 싶을뿐이다. 예의를 지키면 '쟤는 함부로 뭘 물어보거나 뭘 말해도 되는 애'라고 가끔 이용해들려고 하는 인간들이 있어서 나는 우울해질 때가 있지만, 그냥 그런 건 흘려 넘겨야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이니, 좋은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을 알아볼 거란 기대를, 잃으면 너무 슬프잖아.
나는 그러면서도 밝은 척을 잃지 못하는 나에게, 대체 누구 눈치를 그리 보는 거냐고. 좀 미움받으면 어떠냐고. 그런 말을 해댄다. 착한사람 콤플렉스에 걸려서는 이러지도 못하지도 저러는 나에게, 나는 의무를 좀 내려놓으라는 말을 하다가, 그러지 못할 나를 알고는, 그냥 술을 마신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어디서부터 망가졌는가. 어디서부터 기준점이 남이 됐는가. 뭐, 그런 사람 많은데 유별난 척 하지 마. 건실하게 회사 다니면서 제대로 사회생활한 사람들 중에서, 자기 목소리에만 충실히 들으면서 산 사람이 어디 그렇게 있다고. 나는 그렇게 허구의 동료들, 대상들을 마음 속에 만들면서, 다들 힘든 세상이라고, 그렇게 고개를 주억거린다. 어차피 힘든 세상이니까, 그냥 묵묵하게 자리 지키면서 버티는 데서 희망을 찾아볼까. 그런 합리화를 한 번 해볼까. 그런 유혹에 빠져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