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누가 치지라도 않으면 참 좋겠지만, 버티지 말고 얼른 놓으라고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땐 치열한 내면 싸움이 시작된다. 과연 저 말은 의미가 있는 말일까, 내가 과민 반응하는 것일까, 귀담아들을 값어치가 있는 말일까. 적지만, 이런저런 일들을 돌아보면, 안 듣는 게 답이다. 아니, 듣고 되새기되 많은 의미 부여를 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이런 거다. 귀를 닫고 마이웨이 하다 보면 어느 날,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나에게 관심이 많다는 걸 느끼고 문득 너무 무서워질 날이 있을 거다. 그런 날을 방지하고자 하는 측면에서 어느 정도까지는 경계를 하고 있을 필요가 있다는 거다. 근데 그뿐이다. 뭐 과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고, 의미 부여 따위는 더더욱 할 필요 없다. 잘 알아채고 있되, 그걸로 어떡하지 심각하게 고심할 필요는 적다는 말이다.
남의 말이 가장 쉽고, 대화거리가 없을 때 가장 만만하게 얘기 대상이 될 이를 찾는 사람들이, 슬프게도 세상엔 있는 것 같아서, 그런 데서 만들어진 일종의 '억지 대화'에 인용된 데 관해 일부러 찾아 듣거나 뭐 우연히 듣거나, 때론 대놓고 말해줘서 알게 된 일들이 '간혹' 있더라도, 의미 부여 따위는 안 해도 된다는 거다. 멋진 말이 있다. 'XX마이웨이'. 그게 언제나 정답이 아니더라도 뭐 최선책은 될 수 있다.
버티지 말라고 나를 시험하는 것 같은 극한 상황이 와도, 그냥 잠깐 템포를 쉬면 된다. 그리고 다시 생각을 정리한다. 자, 돌발상황을 만났다. 정리하자. 명확히 떠오르는 답이 있다면 행복할 테지만, 없을 때가 있더라. 그런 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뭐 아무튼,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면 그냥 멈춰본다. 그리고 이내 돌아온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지독한 멘붕이 느껴질 땐 사실 답이 없다. 멀리서 바라보려고 노력하거나 정면 돌파하는 수밖에 없다.
정면돌파는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지만, 정면돌파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때도 있더라. 많은 경우는 아니어도, 그게 먹힐 때도 있다. 그래서 무언가를 쉽게 '이건 이래'라고 말할 수가 없다. 계속 답을 찾는 중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는 게 많아질 거라 믿었는데, 더 모르겠는 일들이 늘어간다. 버티는 게 맞는지 의심스럽지만,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냥 버텨보기로 한다. 예전엔 이게 최선이라 여겨 그냥 꾹꾹이가 됐다면, 이젠 아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을, 아니 적은, 대안이 떠오를 경우는, 더는 고민할 필요 없는 거다.
물론 가장 좋은 건, 일단 선택한 일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나는, 뭐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 있어 당연히 수반돼야 할 의심 과정을 말하는 게 아니다. 어떤 환경에 나라는 사람을 둘 때, 뭐 많은 경우 느끼는 일은 아니지만, 아주 간혹, 그 과정의 가치를 두고 의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의심이란 단어가 가진 조금 센 느낌이 부담스럽지만, 뭐 더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의심 단어 느낌이 100이라면 40 정도는 덜어내고 생각했음 좋겠다.
답답함을 덜어내고자 적으면서, 내가 내 혼란에 말려들어가는 것 같은 건, 정답을 못 찾았기 때문일 거다. 완전한 곳은 없다는 걸 분명 알면서, 모순적이지만, 더 나은 선택지가 존재할지 모른다는 것도 알고 있다. 후회하지 말자는 모토를 삼던 내가 근래 최근의 기간을 자꾸 돌아보게 됐던 건, 그 모토에 대한 회의를 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근데 그럴 필요 없다. 그냥 다시 처음대로 돌아가자. 의심하지 말고, 단순하게 일단 가보자. 때론 잘 모를 땐, 앞으로만 가는 것도 최선책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