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친 곳들에 약을 바르다가
"네가 너무 잘 웃어주면서 받아줘서 그래." (사실이 아니다)
동기 A가 말했다. 일하면서 다칠 일이 참 많았다. 최근 또 그런 일이 생겼다. 자리에 가면 늘 내게 집중되는 뭔가 있다. 그럼 그걸 알면서도 쿨한 척 넘기려 다 받아준다. 술이고 제안이고 들어오는 것들에 적당한 거리를 두려고 노력한다. 술대결을 펼치자는 사람들, 그걸 통해 충심을 알아보겠다고 달려드는 사람들. 모든 게 지겹다. 또 크게 심신을 다쳐서 나는 한 걸음 물러섰다. 결국 그런 자리 이후 심하게 다친 곳들을 숨기고 아닌 척 하다가 나는 왜 이러나 의문이 들었다. 정작 가해자들은 뻔뻔하게 거짓말들을 하고 다니는데. 왜 늘 피해자는 숨어야 하는가. 선배 B는 말했다. "우리나라는 긁어부스럼이잖아. 묻는 게 늘 이득이야."
C로 인해 D의 피해 사실이 발생했다고 말하면 D만 회자되고 주목받는 나라. 다른 나라는 내가 가보지 않아 단언할 수 없지만 선배 A는 다른 나라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는 선진국 얘기하는 거겠지만. 코로나19 이후 어디가 선진국인지 개념이 모호해졌다고는 하지만 각자 생각하는 기준이 다른 거겠지. 우리나라, 이 업계는 아직은 공동체주의며 당한 놈이 바보다. 그걸 아니까 지난 시간을 감내했다. 심신을 치유하는 방법은 그것뿐이다. 나대지 말라. 가만히 있으라. 그것이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요구되는 주문이다. 나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심하게 다친 곳에 약을 바른 후 일을 하러 나간다. 아픈 곳을 부여잡고 약을 먹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소문이고 구설이고 다 지겹다. 알려진 후엔 내 편이 아닌, 진영논리로 이끌어 가는 작자들을 봤기에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무서운 동네고 무서운 나라니까.
E가 말했다. 이렇게까지 그 일을 할 필요가 있는가. 가치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왜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이 일을 해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일어났던 일들에 매몰되는 것만큼 바보는 없다고 동의했지만 한편으로는 왜 이런 길을 가는 것인지 자문했다. 나는 물었다.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 이런 길을 걷는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런 일을 겪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그의 두 손 두 발을 잡고 절대 이 일을 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가 하겠다고 죽어도 나서면 아프게 이해하려는 들겠지만 정말 사랑하는 누군가가 이 일을 하겠다고 한다면 나는 그가 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E가 물었다. 그럼 나는 왜 하고 있는 것인가. 가치없다. 하지 말라. E의 말이었다.
무얼 지키겠다고 이러고 있는가. 궁극적으로는 나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들에게 내 아픈 얘기를 할 필요는 없다. 나는 주위 사람에게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하거나 모든 걸 공유하지 않는다. 인간의 심리는 이상하다는 걸 알아서, 어딜 가서 무용담처럼 혹은 자신들의 진영논리에 내 얘기를 이용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봐왔기 때문이다. 그렇게나 신중했는데도 그런 일을 겪는데, 뭐 얼마나 더 어떻게 해야 하나. 마치 예고편처럼, 이 일을 하지 말라고 펼쳐지는 듯한 일들에 대해 나는 그냥 한 걸음 물러서서 관망한다. 중심에 서있으되 고요해야 한다. 늘 그렇다. 별 말이 오가는 걸 알아도 못 들은 척해야 한다. 벌어지지 않은 사실들에 대하여 사람들은 상상하고 소설 쓰기를 좋아한다. 그들에게 먹잇감을 던져줄 필요는 없다. 아, 나는 이 생이 버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