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많던 조직 하나에서 해결하기 위해 머리들을 맞댄 적 있다.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모 남자 선배 몇 명의 존재는 밑의 후배들을 괴롭혔다. 성적인 농담, 부적절한 행동, 지나친 술자리, 허구헌 날 소주병을 깨고 우는 폭력적인 언사는 하루이틀 봐주고 말 문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서는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들을 후배들이 하는 것에 대해 폭력적으로 깎아내리기 일쑤였다. 후배들이 개의치 않으면 폭력적으로 화를 냈는데 이를 아무리 선배나 누가 말려도 해결되지 않았다. 이런 이들은 조직에서 노조에서 하나의 역할을 하는 감투를 줄곧 쓰곤 하는데 (모든 조직이 그렇지는 않을 테지만 주로 술자리에 많이 출석하는 일부 남기자들이 노조 감투를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기들끼리 돌려 쓰는 것이다. 물론 투표 절차가 있지만 형식적이며 결과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니 문제도 해결될 리 없다. 문제가 문제를 해결하는 자리에 앉아있는데 어떻게 해결하나.
언젠가 문제를 해결하려 젊은 후배들이 뭉쳤을 때 직군이 모호한 여성 하나가 자리에 앉아 "요즘 애들은 눌러줘야 해" 하고 랩하듯 말해 분위기 싸하게 만들었다. 그 자리는 폭력적인 일부 남기자들로부터 어린 여기자와 배척받는 여기자들을 연대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 발언을 한 이는 기자가 아니었는데, 매번 구루푸 따위를 앞머리에 말고 회사에 앉아 남직원들과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인물이었다. 아무런 가치 판단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첫째, 저 사람은 이 자리에 왜 왔는가? 둘째, 단순히 여자라는 이유로 피해자 코스프레 연대에 속하고 싶은 안일한 마음으로 왔단 말인가? 셋째, 명백한 피해 사실들에 대해 저리 태만한 자세로 이 곳에 왜 왔는가? 결론은 하나였다. 그는 문제에 관심도 없고 당사자도 아니였다. 그냥 집단에 끼고 싶어서 왔을 뿐인데 멍청하기까지 하니 자리의 중요성을 하나도 모르던 것일 뿐이었다. 모르면 입을 다물라는 말은 어려서부터 듣는데, 저런 사람은 어떤 성장과정을 거쳐 배설을 입으로 옮겨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조직은 단 한 번도 여기자들의 모임 따위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이에 대한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고참 선배들에 의해 막내 기자가 준비한 자리였다. 그는 그 자리에서 '뒤떨어지는 조직엔 이유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가 그런 '멍청한' 구루푸녀를 감싸 안으면서 연대'해줄' 필요는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행동은 않고 말만 많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구태의 이름으로 새로운 것을 무조건 배척하는 것도 굳이 따지자면 선호하지 않는다. 지킬 가치관에 대해서는 끝없이 자기를 성찰하고 행동으로 증명하려 하루를 채우는 이들을 사랑한다. 이런 이들은 묵묵히 자기 길을 걷는다. 시끄럽게 드러내지 않을 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일을 사랑하고 자기 커리어를 위해 의심하고 궁리하는 사람들 말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려 하지 않고 어쩔 수 없다는 태도로 방관하며 욕만 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해결하려는 사람을 손가락질하며 자기처럼 방관하지 않는다며 끌어내리려 하는 사람도 좋아하지 않는다. 반면 문제를 인식하면 함께 해결하는 방향을 모색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나는 하루를 꽉 채워 사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물론 모두가 하루를 꽉 채워 살 필요는 없다. 때론 편하게 흘러가는대로 두는 것이 가장 현명한 답이 되기도 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대상들이 아니다. 썩어 냄새가 나는 것을 귀찮다는 이유로 방치하며 물을 퍼내려 하는 사람들을 끌어내리려고 하는 대상들을 싫어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훼방놓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야만 자신들의 존재 의미가 입증된다는듯 함부로 행동하는데 익숙하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은 위험하지만 때론 가치있는 말이기도 하다. 저 위에 언급한 그 구루푸녀 (요즘은 ㅇㅇ남, ㅇㅇ녀를 평등하게 다들 많이 쓰는 듯하니 이렇게 표현하겠다)가 거품물고 자기 권리를 요구했을 때는 회사에서 보내주는 무료 보라카이 여행 기회를 잡을 때였다. 여행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그 관련된 일을 누구보다 삽질하며 열심히 하던 당사자들은 조용한데, 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구루푸녀는 뻔뻔하게도 그걸 요구했다. 인간의 삶의 양상은 다양하다는 걸 안다. 때로 고통받는 약자들에겐 가혹할 만큼 냉대를 보이고 천박한 자본에 굴복하는 사람도 있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둘 중 하나만 하라는 거다. 창피한줄 모르는 사람이 적극적으로 나대는 걸 보면 그렇게 볼품없어 보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