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처가 필요한 이유

by 팔로 쓰는 앎Arm

어찌 됐든 안식처는 있어야 한다. 뒷배가 없으면 오히려 당당해지기도 하지만 지켜야 할 게 생기면 더 당당해질 수 있다. 나는 삽질을 하면서 내가 지킬 것들을 만들어 왔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살아왔는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삽질은 계속 해야할 것이다. 그게 내 오늘을 만들고 내일을 구성하며 집을 채우고 사랑을 만드니까. 주변을 좋은 사람들로 채우고 가장 내밀한 걸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면 다음은 안정기다. 물론 호들갑스럽게 뭘 자랑한다거나 이렇다 저렇다 할 의도도 그럴 필요도 없다. 그저 일기를 쓸 뿐이다. 사랑하는 공간과 사랑하는 몇 사람이면 인생은 충분히 취할 만큼 아름답다.


그렇게나 아팠던 마음들이 사랑으로 치유되고 갈 데 없어 표류하던 선한 마음들이 비로소 '네가 옳다'고 인정받아 더욱 힘을 얻으며 나를 나로서 강하게 해주는 사람. 나는 그 사람을 생각하면 좋아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바다같이 넓어서 그저 크게 품어주고 사랑해주며 잔잔한 사람. 아날로그를 사랑하는 사람. 현대 문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 연필을 깎는 나를 인정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 치유받을 길 없던 상처들을 그대로 품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 인간이 살면서 만나는 가장 큰 기적은 사랑이라는데, 나는 그 기적을 살면서 이제야 처음 만났고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해서 감히 말할 수도 없게 기쁘다.


그럼으로써 나는 내 모든 상처를 치유하고 앞으로 더 전진해 나가야 한다는 의무에 더 정당하게 응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치유될까 싶었던 상처들은 혼자 아닌 둘이 되면 더욱 치유하기 용이해졌으며 나는 감히 속내를 말하진 않아도 전해지는 위로와 따스함에 그냥 충만해지는 것이다. 감사할 것 투성이인 삶에서도 가끔 밀려오던 슬픔들, 내가 왜 이렇게까지 고달파야 했을까, 왜 나는 아프기만 할까, 왜 나는, 왜 나는…. 하는 아픔들의 일부를 치유해 주는 사람. 그렇게 했으니 좋은 사람을 만났다는, 마침내 얻은 응답들과 보답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있어서, 나는 한 발짝 물러나서 숨을 돌리고, 다시 재도약할 힘을 얻는 것이다. 보다 더 원대한 세상을 위해.


안식처 속에서 나는 내일을 꿈꾸고, 내일도 있다는 사실을 마침내 자각하고,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잠시나마 알게 되어서, 내 세계는 더 커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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