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후배 하나가 스스로를 탓하는 습관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나는 20대 여성 기자 지망생 중 유독 그런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답했다. 사회 정의를 꿈꿀 가능성이 높고 비교적 순진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는 사람들. 물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그 질문을 한 사람의 눈높이에서 답할 땐 그랬다.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했다. 성적인 일을 겪으면 '내가 뭘 잘못했나', '왜 자꾸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나'부터 이유없이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만나면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기냐' 등이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그 문제의 원인은 발화자와 가해자에게 있다. 그런 걸 명확히 알려주는 사회가 아니니 자꾸만 스스로를 의심하고 탓하는 것이다. 정당한 걸 정당하다 말하면 '세다'고 눈치주고 맞는 걸 맞다고 말하면 '너만 잘났냐', '잘났으면 왜 당했냐' 조리돌림하는 사회니 당연히 탓할 것은 스스로밖에 없던 거다.
이걸 깨달은 건 비교적 최근이다. 그간 나는 침묵은 금이며 있던 일도 없던 것처럼 'Let it Go' 하면 더 행복해질 것이며 좋은 기운이 더 많이 찾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행동했다. 그러나 사회는 들이받아야 할 땐 들이받아야 했으며 아닐 땐 아니라고 말해야만 '당연히' 겪지 않아야 할 일들을 안 겪을 수 있는 곳이었다. 아직도 수많은 방송인은 뒤에서 성적인 것을 농담이랍시고 얘기하며 부장들은 남자친구 있냐, 있다면 남사친은 따로 두느냐,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겠느냐, 저녁에 둘이 어디 가자, 주말에 어디 가자 따위의 말을 부끄럽지 않게 한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직도 일부 여자 선배는 왜 화장하느냐 왜 꾸미느냐 외모가 너무 튀어서 기자하긴 좀 그렇고 아나운서나 해라, 이 일 할 사람은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어쩌다 된 거냐 등의 발언을 창피한줄 모르고 해댄다. 물론 이들은 소수다. 하지만 미꾸라지가 물을 흐린다고, 소수가 깨끗한 물에 주는 여파는 상당하다.
나는 어린 시절 이런 말을 들으면 나에게 문제가 있나 생각했지만, 차츰 알게 되었다. 일부 인간은 각자 생각지도 못할 변태성과 악의를 품고 있으며 만만해 보이거나 그래도 될 것 같은 대상에게 부끄럽지 않게 그것들을 드러낸다는 것을. 치부라고 자각하지도 못하고 그저 발화를 '싼다'는 것을 (표현이 거세 미안하다) 말이다. 이건 일반적 관계에서 그저 사랑놀음을 하거나 또래끼리 누굴 연결짓거나 혹은 '가능성 있는' 인간들 사이에서 오가는 사랑놀음과는 완벽하게 다른 얘기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를 구분짓지 못하고 같은 맥락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있으며 (주로 저런 발화를 하는 인간들이다) 그들의 논리가 꽤나 '잘 먹히는' 사회다 보니 피해자들은 결국 자기를 탓한다. 말해봐야 좋을 것도 없다. 인간의 마음은 이상해서 그런 말을 하면 진실되게 위로하는 사람은 소수고 대개는 이상한 소문만 따라온다. 나는 여자라서 어떻다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쨌든 우리 사회는 피해자를 탓하는 게 더 익숙한 문화라는 건 맞는 듯해보였다. 인정하고 싶지만, 나이 들면서 더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어쨌든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어야 하고, 당해도 조용히 넘어가야 하며 '그러려니'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우리 업계에 오래 일하는 사람이 적고 대개 '남성성'으로 대변되는 담배, 묵직한 체형, 욕설 등을 달고 사는 이가 오래 가는 것도 어찌 보면 일견 설득력 있어 보인다. 슬픈 현실이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러니 나는 그냥 '그렇구나' 하는 것이다. 혼자서 뭘 증명하려면 어렵다. 또, 뭔가를 말하면 달리 호도하는 세상에서 속내를 드러내는 일도 위험하다. 언제든 수 틀리면 배신할 수 있는 인간들이 가득한 세상이니 조금은 각박하더라도 그냥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게 좋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옛 조상들이 그렇게도 신을 찾고 팔자를 찾고 그랬던 것 같다. 나도 언젠가 그런 위안을 받은 적 있다. '다 적혀 있다'고. '다 겪었어야 하는 일들'이라고. 뭔지 말도 안 했는데 하나둘 위로하는 말들을 들으면서 나는 많이 위로받을 수 있었다. 정해져 있다는데 뭐 어쩌나. 그런가보다 해야지. 하는 마음이랄까.
돌아와서 자책하지 않는 습관을 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에는, 그냥.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뭐든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나는 뭐든지 뚫고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만 있다면 말이다. 내 든든한 '빽'은 나고, 뭐든 해결하는 것도 나니까. 나는 오늘도 끊임없이 자책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원하지 않았는데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서, 그냥 '우연히' 벌어졌던 일인 것뿐이라고 그렇게 지운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Let it Go'는 '구리다'고. 단순히 덮으려니 덮어질 수 없다. 그냥 벌어졌던 사실에 충분히 아파하고 인정하며 기억하고는 자책은 하지 말아야 한다. 재수없어서 걸린 돌부리일 뿐이니 얼른 털고 간다는 의미에서의 'Let it Go'로 해석해 오늘을 버텨내야 한다. 그럴 가치가 충분한 삶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