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꾹 다무는 일은 대개 현명한 처사로 대변된다. 속칭 '나대는' 사람들은 무리나 조직에서 오래가지 못한다. 나대려면 든든한 재력이나 뒷얘기에 도가 튼 누군가가 "잘생겼잖아" 혹은 "돈이 많아" 등 티 안 나는(?) 바람잡이 역할로 밀어줄 정도의 배경이 필요한 듯해보였다. 소름돋게 당연시되는 걸 보면서 나는 내가 너무 순진한게 살았구나 했다. 그런 말에 놀라지 않는 어른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싫어서, 어쩐지 멀리하고 싶어졌다.
대개 여성성이라는 것이 부정되고 남성성이 부각되는 사회에서 나는 각 무리서 남성성으로 대변되는 가치가 지향되는 현상을 많이도 봐왔다. 경쟁력 있어 보이는 젊은 여자는 '무섭다'는 첫인상 성적표를 받아들여야 했으며 순종적으로 눈물을 보이거나 그저 웃음으로 응하는 여자는 '좀 멍청하지만 지켜주고 싶은 대상' 포지션으로 무리에 자리잡았다. 그러나 그 여자조차 일을 잘하게 되거나 다른 능력이 증명되는 순간 '무서운 애'로 바뀌었다. 그런 말을 하는 주체는 여자든 남자든 다르지 않았다. 그런 것들을 관찰하면서 나는 인간 문화사에 관심을 가졌다. 인간의 조직 체계는 어떻게 발전해 왔기에 '묘하게' 순종적이며 무능한 여성과 허풍떠는 남자가 강자가 되었던 걸까. 물론 이는 현상황에 가져다 대려는 것들이 아니다. 다 과거의 일이며 구태가 만연한 조직 특성상 발생했던 일들이다. (라고 적으면서 나는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은 가진다.)
나 역시 그저 침묵과 웃음으로 대답하는 것이 미덕이라 여기며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발언하지 않음으로써 좋은 평가를 받아왔던 사람으로서, 그저 그것들이 남자든 여자에게든 적용되는 미덕이라 생각해 왔다. 허나 최근 몇 년간 새로이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때로는 리더, 때로는 순응자, 때로는 팔로워 등의 역할이 요구되는 것을 보며 발견한 것은, 주로 나이든 남성이 많을 경우 나이든 여성 역시 똑똑한 여성을 짓밟으며, 남성보다 더하게 이들의 발언권을 뺏으려 한다는 것을 관찰했다. 이건 또 색다른 접근이었다.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순 없으나 그런 일부가 존재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 '나이든 여성'이 자신의 발언권을 강조하려 하는 전제인가 하고 오랜 시간 지켜봤으나 그것은 아니었다. 그는 젊고 똑똑한 여성들의 발언권을 뺏고 배제시킨 후 생긴 모든 공백과 힘을 아주 적극적으로 나이든 남성에게 주었다. 나는 그것을 관찰하며 흥미로움을 느꼈다. 그 나이든 여성은 커리어라고 하기엔 애매한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걸 욕설이나 젊고 예쁜 여자들을 '창녀'로 만들며 욕하고 자신의 열등감과 결핍을 해소하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그의 인지 체계는 왜 그렇게 발달(?)한 걸까.
항상 적은 내부에 있다. 그 나이든 여성은, 자신이 페미니스트라며 당당하게 술자리에서 얘기하면서 젊은 남자들의 손을 이끌고 술을 마시자고 유혹했다. 젊고 예쁜 여성들이 자리에 어울리려고 하면 아주 적극적으로 욕을 하고 (놀라울 정도로 뻔뻔하게 욕을 하는데 나이가 너무 많아서 뭐라고 할 수가 없다) 보내 버리는데 도가 튼 여성이었다. 단체 채팅방엔 자신이 연예인을 만나러 간다느니 묻지 않은 말을 혼자 떠들어 장내를 숙연하게 만들고, 술자리에선 젊은 여자에게 '나는 연봉도 높고 연애도 많이 해봤다. 운동선수 만나봤나? 나는 운동선수도 만났다. 연하남이랑 결혼했다'고 안 물어본 이야기를 떠벌리며 젊은 여자를 당혹케 했다. 그 젊은 여자는 자기 커리어를 가진 똑똑한 여자였는데, 그저 앉아있을 뿐이었다. 자연스레 그에게 쏠리는 관심은 그 '나이든 여성'의 알 수 없는 어떤 구석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그는 술자리에서 그 나이든 여성에게 몇 번 그런 얘기를 웃으며 견뎌주었으나 이후엔 노골적으로 피했다. 때론 예의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이 조직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이 새로운 유형의 여자를 보면서, 과거의 여자들의 모습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그는 그런 식으로 나이들어 오늘에 이르렀으리라. 과거엔 그렇게 자신의 또래들을 욕하고 거짓 루머를 뿌려 살아 남았으리라. 세월은 정처없이 흘러갔는데, 정신 못 차리고 여전히 그 자리에서 이젠 젊은 후배들을 제물 삼아 자신을 돋보이려 했으리라. 이건 또 무슨 연구 대상이 될까 흥미로웠다. 결혼을 앞둔 젊은 여성에겐 '늙어 애 낳으면 넌 안 그럴 것 같냐'며 갑자기 앞뒤 없는 공격을 퍼붓고 밋밋하게 생긴 젊은 여성은 자신의 심부름꾼으로 거뜬히 삼는다. 나는 세상엔 많은 괴물의 형태가 있다는 걸 또 보았다. 그러니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다. 성별에 따라 뭐가 갈리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다양하다. 뭐 다 아는 얘기로 결론내겠다는 건 아니다. 나는 어쩌면 오히려 이런 여성들이 실질적인 기본권 상승을 위한 정당한 행위들을 흐리는 주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모든 것을 과거의 여성성과 남성성으로 나눠 보면서 그 특징들을 성적인 것으로 연관시키려는 추악한 민낯이랄까. 능력없이 나이 들면 괴물이 된다. 혼자 괴물이 되면 문제도 아니다. 괴물이 되지 않은 순진한 것들을 자신처럼 만들려 하기에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