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언론의 '관음증'에 환멸
"요즘 애들처럼 굴어."
A가 말했다. 내가 너무 당하고 다니니까 속상해서 해준 말이다. 요즘 애들이란 뭘까. 언제나 요즘 애들이란 지표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건 그냥 이해 안 되는 일부를 무개념화해 만든 단어라고 생각한다. 후배들 중에도 자기 밥벌이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이가 있다. 반면 부모의 지원을 있는대로 다 받으며 자신이 대단한 사람인양 착각해 이상한 말을 하고 다니는 이도 있다. 예의를 지키는 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도 있다. 그들을 싸잡아 요즘 애들이라고 부르기엔 전자에게 너무 미안하고 그들로서는 억울한 일 아닌가. 그래서 나는 그 개념이 뭔지 동의할 수 없다. 그러나 무슨 얘기인줄은 알겠다. 나를 다치면서까지 일하지는 말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가?
나는 일만 하고 싶다. 근데 따라오는 말이 너무 많다. 이상한 구설수도 너무 많다. 그저 젊은 여자가 일을 열심히 하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 심심풀이 땅콩처럼 말을 지어들 댄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욕먹는 생활. 나는 이게 10년이지만, 마침내 지겨워서 모든 게 환멸난다. 그들에게 미안하지만, 내 인생은 그리 화려하지도 않고 드라마틱하지도 않다. 그저 공부하고 좋은 성적을 냈으며 회사 평가서 좋은 결과를 냈을 뿐이다. 그게 다인데, 내가 젊은 여자가 아니었다면 그저 능력을 인정받았을 것들에 대해 별 말이 오가는 걸 들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라며 별 걸 다 시킨다. 해내고 나면 독한 년, 무서운 년. 그 편이 낫긴 한데, 나는 이 나라 어디에 페미니즘이 들어와 있다는지 모르겠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살찌우면 페미니스트인가? 왜 모두들 남을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인가.
피해 사실이 발생하면 이 더러운 동네는 그걸 가지고 자신들의 입맛대로 협상 테이블에 올릴 사안으로 삼는다. 피해자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기자라는 이름을 단 자들은 제대로 취재도 하지 않고 이상한 기사를 쓴다. 그럼 나는 환멸을 느낀다. 이 회사의 데스크는 무얼 하는 것인가? 이 작자는 기본적인 교육도 받지 않고 기사를 쓰는 것인가? 인터넷 언론의 난립, 지면을 가졌지만 양아치 집합소인 지면들, 그들에게서 나오는 결과물은 대체 누굴 위해 어디로 쓰이는가? 사적 이익을 위해서다. 그들 조직과 집단을 위해 펜으로 장난질을 한다. 오래 전부터, 이 업계가 피해자의 의사와 피해 사실 전시에 대해 등한시하는 것을 봤다. 오늘날도 똑같다. 희망은 없다. 이 동네는 원래 이렇다.
사기업으로서의 언론이 그런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 일개 개인이 의문을 품어봤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피해 사실들을 전시하면서 떨치고 일어날 만큼 관종도 아니고 그렇게 독하지도 못하다. 내가 이렇게 쓰는 것은, 피해자의 의사와 다르게 자신들의 하루 기삿거리, 자신 조직의 비호 논리로 일부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마치 자신들이 겪은 양 화를 내며 전시하는 이들을 지적하고자 함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정말 피해자를 위해 기사를 썼는가? 피해자에게 연락 한 번 했는가? 사실을 제대로 파악했는가? 그저 전해들은 이야기들과 뇌내망상으로 기사를 쓰고는 자신들이 기자라고 하고 있을, 또한, 가해 사실을 모르쇠하며 자신들이 기자라고 하고 있을, 사람과 조직에 대하여. 나는 늘 환멸을 느낀다. 요즘 애들이 모두 속칭 '나대고 트위터하면서 자신의 피해사실을 전시'하는 건 아니다. 안 그런 요즘 애들이 더 많다. 어느 세대고 그렇다.
나는 그냥 참는다. 더한 일도 참았다. 이까짓 것, 별 거 아니라고 나를 속이면서 그냥 참는다. 그게 나를 지키는 길이니까. 남의 드라마틱해 보이는 인생에 대해 소설쓰고 수군대는 일들, 모든 게 지겹다. 다 들여다 보면 그냥 인간이다. 제발 좀, 남일에 관심을 꺼달라. 아픈 건 나인데 왜 남들이 신나서 난리인가. 일부 인간의 성악설을 다시 한 번 신뢰하게 되는 요즘이다. 천성이 착한 사람도 많지만 못된 사람도 참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