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와 나는 서점에 가는 걸 좋아한다. 일주일에 3회 이상 서점에 가서 신간을 보고 (업무 외 취미생활로) 구매하며 가끔 책의 내용도 공유한다. 손에 꼽을 정도로 가끔씩 공유하지만 그 때마다 T는 트렌드 서적의 '올해 주목해야 할 유튜브 채널' 등 '올해 주목해야 할 ㅇㅇㅇ'를 내게 보여주곤 한다. 그런 걸 보기 싫어하는 (가치판단이 들어가 일하는 데 방해될까봐 하지 않으며 필요할 경우엔 자료 조사를 한다. 그 외 경우에 한정하는 말이다) 나는 슬쩍 보는 체하고 초점을 흐리기 일쑤다. T는 그런 내 반응이 재미있어서 더 개구지게 보여주려고 노력할 때도 있다. (읽는다는 등.. 그럼 나는 귀를 막는 놀이를 한다. 서점이니 우리끼리 5초 안에 조용히 일어나는 일들이다) 애니웨이, 그러다 미디어 스타트업 추천 목록을 T가 읽어 주었는데, 가관이었다.
미디어는 왜 항상 연구 대상이고 시빗거리일까. 미디어란 탄생부터 그랬다. 기사를 쓰는 일이 쉽지 않은 건 (요샌 이런 말도 통용되지 않아 설명하려면 구구절절 길어질 것 같다) 사안을 냉정하게 보는 걸 평생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다양하고 이너넷 시장도 시끄러워져서 이젠 누구나 뉴스를 소비한다. 업계 외적으로는, 일부 이너넷 유저들이 아무 증거나 모아 가짜뉴스도 막 쓴다. 그것도 아주 쉽게. 무료로, 언제 어디서든. 가짜 졸업사진을 올려 루머를 만들고 멀쩡한 사람을 죽었다고 증명하는 글을 쓰는 등 소시오패스적 면모를 가진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불쑥불쑥 나타나는 무서운 세상이다.
그런 상황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주력 뉴스에 돈을 낸다는 개념은 국내에서 성립되기 어렵다. 첫째, 국내 소비자 대다수는 넷플릭스 등 OTT 서비스를 제외하고 뉴스에 대한 인터넷 유료 구독 경험이 없다. 둘째, 이 때문에 대부분의 주력 매체는 기본적으로 뉴스를 무료로 제공하되 일부 코너에서 뉴스 소비를 위한 콘텐트를 만들어 독자를 유도하고 있다. 하나의 실험 방식에 그친 경우가 많다. 셋째, 돈을 내야 볼 수 있는 기사만 내는 곳이 있다면 '작은' 곳이 대부분인데, 검증되지 않아 확증편향이 가중된다. 믿기 싫었지만 그게 현실이더라. 미디어는 본래 확증편향의 산물이다. 근데 콘텐트에 돈을 내게 하는 게 전부인 매체가 생긴다면, 한국 현황에서는 확증편향의 산물이 될 가능성이 높더라. 독자의 눈치를 보는 확증편향이면 차라리 다행이다. 검증되지 않은 일부 소속원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매체는 그걸 만든 대표가 후배 이름 빌려서 똥글을 싸지를 가능성이 높다. 돈을 위해서라면 뭐든 하기 때문이다. 경력을 한 줄이라도 쌓겠다고 그런 걸 견디는 이가 있다면 단언한다. 참지 말고 나오라. 그건 경력이 되지 않는다. 자신에게도 못할 짓이다.)
무슨 얘기인지 풀어보자. A 매체는 B 분야 특성화로 홍보를 한 후 독자들을 모았다. 초기 1년간 A 매체는 업계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다. 이들은 패션, 뷰티 등엔 이미 널리 퍼져 있었으나 어쩐지 다른 분야에는 사용되지 않던 방식의 뉴스 큐레이팅 서비스를 선뵀다. 그러니 초기 1년간 성공한 듯했다. 유료 독자를 끌어모았고 나름 선방했다는 평가를 얻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자본이 딸리기 시작하자 이들은 자신들이 초기에 설정했던 분야에서 벗어나 어뷰징을 시작했다. 이 매체에는 기성 종합매체에 등에서 제대로 훈련받거나 기자 일을 해본 사람이 없었다. 이건 중요한 일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이건 분명하다. 젠더 감수성이나 사회 분야 기사 작성을 할 때 묘한 피해자 등의 심리를 잘 이해하고 올바른 기사를 작성하는 능력 등을 타고난 경우도 있지만 없을 땐 훈련받아야 한다. 분석 능력도 마찬가지다. 특히 뭔가를 비판하고 싶다면 제대로 해야 한다.
나는 여러 매체를 거치며 이런 능력이 전무한 사람도 봤고 타고난 사람도 소수지만 봤다. 전자가 대다수다. 애석하게도 A 매체도 그랬다. 이들은 일반 종합매체서 나오는 사회 기사들을 단순히 어뷰징거리로 봤으며 경악할 만한 수준의 기사를 써냈다. 독자나 소속원이 쓴소리를 하면 '개돼지' 취급을 했다. 그 매체 대표는 엄청난 착각에 빠져서 이탈자들이 끝없이 생겨도 자기 위안하기 바빴다. 보기에 위태로웠으며 소시오패스적 성향이 엿보였다. 이들은 끝없이 침몰하는 중이다. 업계에서 이들을 과거의 떠오른 혜성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떠올랐으면 그 자리라도 유지해야 하는데 초심을 잊고 돈에 눈이 멀면 그리 된다. 애초에 초심 자체도 독자의 돈을 모으기 위한 눈속임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까지 산다. 이 증언과 의심들은 A 매체의 내부 구성원들로부터 나온 것이다.
독자의 의견에 따르면, 어뷰징을 시작한 A 매체의 기사는 특정 성별을 깎아 내리고 정부 정책을 논리 없이 비난하는 소설이 가득하다. 애정어린 구독자들은 글을 쓴 이에게 호소도 해보고 정신차리라는 글도 보낸다. 기사의 수준이 너무 낮기 때문인데, 돈에 눈이 멀면 들리지 않는 듯하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니 이해하자고는 하지만 그러기엔 기사의 수준들이 너무나 위험하다. 그러나 일반 독자는 알 수 없다. 이 매체의 기사들은 돈을 내지 않으면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쓰는 기사가 너무 위험해서, 그런 기록 자체가 남는 것이 역사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걱정한다. 그러나 그건 다 '개돼지'의 소리로 묻힌다. 과격해 보이지만, 그들이 그렇게나 과격하게 생각하고 있다. 검증되지 않은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과하게 스스로를 띄우는 행위. 냉정하지 못하고 착각을 지속하면 괴물이 된다.
무엇이 문제인가. 돈을 안 내고 안 보면 되지. 난 그리 생각했다. 얽히고 싶지 않았다. 근데 문제가 있더라. 내 친구 T처럼 트렌드 서적을 맹신하는 이들이 생겼다는 거다. 이걸 참고만 하면 되는데, 업계 사정이나 인문학 사회학 등등 현업에서 뛰지 않는 사람도 있다. 혹은 둔감해서 트렌드를 스스로 잘 모르고 서적만 맹신하는 사람도 있다. 그게 문제다. 일부 서적을 제외하면, 이 분야 책들은 두어 명, 혹은 저자 한 명과 팀 하나가 단기간에 인터넷 검색 등으로 마련한 소재로 쓰는 경우가 많다. 현업자라고 이름을 달고 나와도, 책을 쓴 그들도 자신이 무슨 말을 썼는지 모른다. 권위에 따른 호도와 무지는 이렇게 무섭다. 트렌드 서적이 나오니 내야 하는데 명확하게 트렌드 파악을 하지 못하고 주먹구구로 막으니 이 꼴이 난다.
그러니 이 분야 책을 쓴 사람 역시 그 안에 자신이 추천한 수백 가지 '올해 주목할 ㅇㅇㅇ'에 가입도 안 하고 내부 사정도 모르고 잘 파악도 못하고 쓴 일이 허다하다. 그걸 본 독자는 맹신하고 결제하고…. 이게 무슨 일인가. 왜 사람들을 속이느냔 말이다. 본래 연구가 부족하면 정보랍시고 쓸데없는 사례들이 들어간다. 정교하게 쓰인 책은 적절한 사례를 넣는다. 그런 건 티가 나고 앞뒤 사정이 이해되며 완벽하진 않아도 나름 완성도 있다. 그러나 연구가 부족하고 트렌드 서적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나온 책은 티가 난다. T에게 "그런 책 믿지 말라"고 말하는 것도 이상하므로, 그냥 웃고 만다. Don't show all you have, don't tell all you know, don't lend all you have, and don't trust all you hear. 내 마음 속에 늘 둥둥 떠다니는 말. 그걸 곱씹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