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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Mar 14. 2021

선한 사람이 이긴다

최근 우스운 일이 잦았다. 별 일은 아니고, 그냥 세상 참 좁다는 걸 알아서다. "혹시 누구 아냐"며 다가온 사람은 "자신의 10년지기인데 거기 팀장 10년 한 ㅇㅇㅇ를 아느냐"고 물었다. ㅇㅇㅇ는 우리 회사 팀장은 아니고, 협력 외주 업체 팀장이라 답하니 (업무상 만난 자리니 둥그렇게 답하는 걸 요구한 게 아니었기에) 질문한 이는 발끈하며 "아니다. 내 친구인데 거기 팀장으로 오래 다닌 사람이다"라고 덜컥 화를 냈다. 그러더니 자신의 작업물과 후배들의 작업물을 내 앞에 보이며 "이건 내가 해서 세세하고 괜찮고 이건 그냥 일반 기자들이 한 거"라며 굳이 자신의 밑바닥을 드러내 보였다. 일기에 여러 번 썼듯 나는 자신이 속한 조직의 사람들을 초면부터 특히 그럴 필요 없는데도 깎아내리는 책임자 등을 좋아하지 않는다. 실상은 후배들이 다했거나 알 수 없는 열등감이 그를 감싸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가 10년지기라며 물은 ㅇㅇㅇ는 내가 데스킹하던 외주 업체 직원이었다. 기사를 엉망으로 써온 바람에, 가르치느라 이골이 났다. 나는 10년지기라는 사람의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순 없었다. 그는 내 상사를 안다는 느낌으로 ㅇㅇㅇ를 언급했겠지만, 미안하게도 그 반대였던 것이다. ㅇㅇㅇ는 늘 자신의 기사를 하루 서른 번 이상 수정하길 요구할 정도로 기사를 대충 썼다. 사실 파악이 전혀 안 된 내용을 써 추가 취재를 요구하길 몇 번이다. 게다가 부적절한 지원을 받고 기사에 노출하길 원하는 등 속칭 '영업 양아치'로 불린 사람이다. 열등감도 커서 괜한 하이어라키를 위해 일을 만들어 줘 그 밑의 후배들이 한 달을 못 버티고 나간 것이 내가 본 것만 1년간 5번이다. 자신의 기사에 대한 감상평을 쓰라거나 청소를 해두라는 등 어디에서 배운 것인지 모를 것들을 후배들에게 시키곤 자신은 언제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게 후배들의 전언이었다. 


그는 외부 협력업체라는 것을 속이고 부적절한 활동을 하며 일선 취재기자들의 정상적 취재 및 업무 행태를 여러 방식으로 방해했다. 덕분에 불만이 잦았다. 잦은 기사 수정 요구, 금품이나 여행 지원 등 부적절한 교류 후 기사 작성, 우리 회사 정직원인 것처럼 속이고 다니며 부적절한 커넥션을 만들어 보도국 내 취재기자들이 올바른 고발 기사를 작성했을 때 그 고발 대상자가 대단한 착각을 하고 우리 회사로 항의를 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이쪽 일에 환멸을 느끼는 이유로는 상대를 협박한 영업, 회사 이름을 거짓으로 달고 다니며 영업하는 일부 소속 불명 기자들, 열등감에 아무에게나 갑질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협력 업체 기자 (이들은 편의상 기자 등의 이름으로 불리지만 실상 다른 일을 한다. 구별짓자는 게 아니고 모두를 싸잡아 이르는 말이 아니며 부도덕한 행위를 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등이 있다. 그 ㅇㅇㅇ는 이 모든 것에 책임감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사람이 내 일기장에 등장한 일은 없는데 나는 그를 중히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ㅇㅇㅇ는 일을 못하는 트러블메이커라는 데 보도국 내서 이견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거니와 그만큼 큰 존재가 아니어서다. 근데 최근 업무상 만난 A가 혼자 발끈하며 ㅇㅇㅇ를 얘기하니 (A는 내가 속한 회사들을 경외하듯 리액션하는 과장된 이다. 그와 업무는 하지 않기로 결정한 건 이런 이유다.) 나는 그냥 속으로 웃고 말았다. A는 ㅇㅇㅇ를 괜히 언급함으로써 내게 기선제압을 하지 못하자 그걸 끈질기게 붙들고 늘어졌다. 이 업계에 이런 캐릭터들이 종종 있는데, 열등감이 발로일 때가 백발백중이다. 


얼마 전에 유사한 이들을 몇 번 겪었기 때문에 잘 안다. 이런 부류는 얽히지 않는 게 상책이다. 잘 모르는 이인데 나를 잘 안다고 말하고 다닌 이들은 몇 년간 정말 많았고 (이건 학창시절 누구 아냐 이런 느낌이 아니다. 업무 세계에서의 거짓부렁이라 결이 좀 다르다), 최근엔 그냥 이름과 얼굴을 안다는 사실에 살을 붙여 거래를 트려고 했던 일도 몇 번이나 귀에 들려왔다. (이런 일이 있으면 전화가 온다. 덕분에 안다.) 처음 만난 사람이 셀카를 찍어 자신의 SNS에 올리고 그를 토대로 광고를 했던 일 등 나는 별 일을 겪은 덕에 이런 양아치 부류를 만나면 쎄함을 느끼고 얽히지 않으려 한다. 이제 습득한 능력이다. 누구에게 말하진 않는다. 내가 겪은 피해들이지만 사연 많아 보이는 건 질색이며 사람들은 남 일에 관심이 없다. 그냥 내 일기에 웃긴 일이 있던 걸 적다 비슷한 부류의 인간들이 생각난 것일 뿐이다. 난 기생충같은 양아치 부류가 싫다. 자기 힘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웃픈 일은 또 있다. 몇 달 전 오퍼를 받아 대화를 하던 회사에선 지난 회사 소속 선배 A 대신 나를 골랐다는 걸 굳이 소상한 사정을 덧붙여 말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A 선배가 정말로 단순히 돈 때문에 지난 회사에서 그렇게나 '개썅마이웨이'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냥 이런저런 일이 들려오니 웃픈 일이 늘어나서 나는 어쩐지 허탈하게 웃는다. 선하게 살길 잘했다. 어디서든 '그거 아닌데요' 할 수 있는 경력을 내가 내 손으로 만들었다는 것, 내 뒷배가 나라는 게 이렇게나 나를 이제서야, 당당하게 만든다는 걸 안다. 언젠가 그렇게 되리라고는 생각했지만 너무 힘들어서 의구심도 들었던 게 사실이다. 부적절한 요구를 칼같이 거절하면서 차갑다는 소리부터 그런 걸 안 받고도 고과가 좋으니 아쉬운 게 없다는 점에서 괜한 시기를 얻었는데 그게 꽤나 힘들었다. 빠른 승진이나 고과는 질투를 불렀다. 왜 적당히 타협하지 않느냐, 너만 깨끗하냐 하는 말들을 신념을 지키며 거절한 결과, 나는 이렇게나 당당한 오늘들을 살고 있다. 이는 모두 아픈 마음을 삼키며 당당한 과거들을 보내온 덕분이다.


책임감 가지면 이 세상에선 바보가 되는 걸까. 그런 어리석은 생각도 했다. 근데 아니다. 그렇게 살길 잘했다. 내 과업을 수행하고 내 길을 정직하게 걸어온 덕분에, 나는 부적절한 얘기들을 들으면 아니라고 선을 그을 수 있고 업무상 이상한 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 안 좋은 일을 하는 이들을 경계한 덕에 신념을 지킬 수 있는 길들을 얻었다. 선한 사람은 이긴다. 소수더라도, 그렇게 열심히 살아 자신의 길을 증명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한 명이라도 일기에 기록해 둔다면 좋은 기록이 되지 않을까. 지금의 나는 언제나 그랬듯 일기를 일필휘지로 툭 쓰고 말지만, 미래의 내가 언젠가 열어볼 때 큰 힘이 될 것이다. 잘하고 있다. 공정과 정의가 농담으로 소비되는 근래, 그런 말에 속으면 안 된다는 걸 다시 되새긴다. 하늘과 땅이 안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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