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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Aug 20. 2021

요즘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꿈을 위해 많은 걸 버렸다. 모든 것이라도 별 무리 없을 만한 것들이었다는 것을 안다. 버리길 고민할 때도 알았고 지금도 안다. 모든 걸 버려야 새로운 게 들어온다. 그걸 알기에 버렸다. 


인생의 모토가 있었다.


후회할 거면 그렇게 살지 말고 그렇게 살 거면 후회하지 말자.


그래서 버렸다.


더 그 길을 걷다가는 후회할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만큼 걸어왔는데, 이런 생각이 든다니.

벌써 다 올라온 거라니. 이게 다라니?


나는 고민했다.

괴로워했다.

해서, 선택했다.


모든 걸 버리기로.


알고 있었다.


책임져야 한다는 걸.


주위의 그 누구도 이 선택을 쉽게 이해하지 않으리란 걸.


누군가는 넘어졌다고 생각할 것이고

누군가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 의심할 것이라는 걸

알았다.


상관없었다.


알 사람만 알면 됐다.


더 중요한 건,

내 마음의 소리를 따르는 것이었다.


마음이 말했다.

이건 아니라고.


해서, 나는 정상을 찍은 산을 버리고.

다른 산을 타기로 했다.


정상을 찍은 낮은 산에서,

풍경을 그저 내려다보며 후회하느니.


옆의 높은 산을 천천히 올라,

보다 더 높은 다른 형태의 정상에서

마침내 쉬는 이를 부러워하느니.


새 산을 타보자고.


해서, 나는 새 산을 탔다.


생각은 했지만,

알고는 있었지만,

각오는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괴로운 길이었다.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내 마음마저

그 때의 '버린 산'을 떠올린다는 것이었다.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안온함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은

인간의 본능이 나를 때렸다.


괴롭히고, 또 괴롭혔다.


그럴 때면 나는 걸었다.

그저 걷고 또 걸었다.


묵묵히 하루를 살았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 산의 새 정상이 나올 때까지,

생각보다 훨씬 거센 야생의 바람을 

정통으로 맞고,

정상에 올랐던 과거의 산에 대한

타인들의 호기심을 견디며,

나는 그저 걸었다.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내 마음이 가리키는 정답이 중요했다.


많은 기회가 왔다.

수많은 손길이 내게 왔고,

나는 골라야 했다.


고르고 고르면

다음 미션이 떨어졌다.


괴로웠다.

처음부터 밟는다는 것은,

이만큼 커져버린 산을 이미 가지고

새 산을 탄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괴로웠다.


그래도 버텨야 했다.

그게 내 마음이 가리키는 정도니까.


그저 버티고 버텨

다시 새로이 더 높은 산의 정상에 오르니,

나는 바람에 맞서 나를 지키는 일에 

이제야 다시 신경쓰기로 했다.


새 길을 걷는 동안,

나는 생각보다 더 다쳤고

더 강해져 있었다.


별 거 아니었다.


이보다 더한 일도 겪었다는

과거의 내 울림들이

그 어떤 것보다 나를 뒷받침했다.


나는 내 살과 뼈로 나를 일으켰다.


새 산을 타느라

직진만 했다.


이제 마침내,

주위가 보였다.


흔들릴 필요도,

흔들려서도 안 되는,

내 오늘을 잡고,


나는 괴로운 마음을 다독이고자

오랜만에 일기장을 켠다.


내가 오르고자 했던 산과,

지금과,

버렸던 산과,

수많은 가시와 바람.


인생은 그저

내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걸을 수 있다면

그뿐인 것을.


나는 바람에 괴로워 하다,

괴로움의 감각을 끊어내자고 주문한다.


감각을 꺼버리고,

그저 안으로.. 안으로..

침잠하자고..


그렇게 내게 얘기한다.


나를 달랠 수 있는 것은,

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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