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글을 써대느라 바빠 일기장을 찾을 일이 적었다.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 건 여느 때와 같았으나, 그 분야가 더 늘어나 역시나 기계처럼 살았다. 새벽같이 일어나 마감을 하고 취재를 하고 운동을 하고 취재를 하고 또 마감을 했다. 외부 문의가 오면 응대했다. 그 삶의 연속. 그 속에 나는 없었으나 상관없었다. 영혼이 살아 숨쉬는 일. 가슴이 뛰는 일. 마음의 지표가 향하는 일. 그걸 한다는 것만으로 괜찮았기 때문이다. 사기를 당해도, 뒤통수를 맞아도 그냥 웃었다. 보시했다 치면 될 일.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내가 맞은 뒤통수, 내가 당한 사기는 당사자들에게 반드시 돌아갈 것이란 걸 알기 때문에, 나는 도를 넘게 화를 내지도, 의견을 표출하지도 않았다. 그저 선을 그으면 되었다. 내겐 젊음이란 강한 무기가 있으니.
뭐든 그냥 얻어지는 것은 없다. 내가 나를 기특히 여기는 점 중 하나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감사를 밥먹듯 쉽게 한다는 것이다. 그건 기본권이나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결의 것인데, 기본적으로 인간이란 살면서 늘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 방안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인간의 오늘을 값지게 한다. 해서 나는, 알차게 살아온 나의 인생에 대하여, 무슨 일이 벌어져도 꺾이지 않은 나의 삶과 그를 도와준 모든 기운과 커리어들에 대하여 대단히, 진심으로, 감사해 마지 않다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거리낌 없이 버릴 때를 안다는 것이다. 버려야 채워진다는 그 기본적인 진리를 체득해서, 아닌 것을 부여잡고 괴물이 되는 일은 없게 한다는 것이다.
해서, 내 고민을 그저 도닥여본다.
대개 미디어란, 탄생부터 광고주의 눈치를 보던 이 미디어 업계란, 경제 불황과 미디어 난립, 나아가 온라인의 대중화에 따른 난립 너머의 더 난립을 겪으며 이젠 광고주와의 갑을관계가 완전히 뒤바뀌어 버린 상태다. 갑은 광고주, 을은 미디어다. 그런 상황에서, 젊은 기자들에게까지 광고를 유치해 오라는 주문이 당연해진 매체가 다수인 이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브랜디드 콘텐트부터 B2C 모델까지, 대다수의 언론사가 많은 시도를 하고 있으나, 그 결과가는 결국 광고주로의 회귀 또는 트래픽에 의존하기 위해 독자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자극적으로 만들어 주는 행위로 귀결되는 몇 년 간의 몇 군데 행태를 보아 하니, 점점 더 의문이 드는 것이다.
본래 취재기자를 꿈꾸면서, 그 누가 광고 유치를 자신의 미래로 삼았겠는가.
그러니까, 창간 특집이라거나 기획물로 광고주의 취향에 맞춘 글을 적어준다는 미래를, 누가 꿈꿨겠느냔 말이다. (있다면 미안~) 그런 지시에 순응하는 것이야말로, 영혼이 죽은 행태가 아니란 말인가.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럴 수 없다는 선택지가 있을 때, 그렇게 해야만, 우리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을 살며, 그저 개똥밭을 구르면서, 상한 몸을 돌아보면서, 우리는 왜 이 똥밭에서 이렇게 구르고 있느냐고 묻다가, 그냥 또 그러려니 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