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필요한 건 체력

by 팔로 쓰는 앎Arm

체력을 길러야 정말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말. 사실이다. 매일을 열심히 달렸고 커리어를 잘 쌓아 왔다면, 그걸 한순간에 뒤집을 수 있는 위협적인 존재가 생기는데. 그건 바로 자신이다. 헛소문이나 시기어린 말들이 나를 무너뜨리는 게 아니다. 그걸 버텨낼 체력이 사라지는 순간, 나는 무너진다. 그걸 절실히 느끼느라 요즘 바쁘다. 온 몸이 무너지기 직전이다. 뚝딱 해내던 것들이 권태로워지는 순간, 아니 체력이 그걸 뒷받침 할 수 없어 권태로 착각하는 순간. 그건 위기다.


사람을 만나고 기사를 쓰고 취재를 하고 다시 반복. 그리고 집에 오면 산더미 같은 집안일을 한다. 빨래부터 청소까지. 물 때는 또 왜 이리 끼는지. 먹겠다고 뭐 한 끼 하면 나가는 돈은 또 얼마인지. 집에서 따순 밥 먹고 다니는 그 치들보다는 같은 처지에서 하루를 버텨내는 이들과 대화하는 게 훨씬 낫다. 우리 모두 힘들다는 걸 아는 그 오묘한 동지애. 현장에서 갑자기 만났든, 우연히 옆 자리에 앉아 대화를 시작했든, 어찌들 그리 서로를 알아보는지. 가끔 생기는 이런 현장 전우는 고마운 존재다. 그 한 번인 대화만으로 그 날은 활기가 돈다. 우리는 하루 벌어 하루 근근이 먹고 산다고 우리를 자조한다. 그래도 다른 길은 생각하지 않는다. 유혹이 오면 생각은 하지만, 선택은 결국 다시 이 판이다.


가끔 만나는 비슷한 처지의 이들과의 대화가 더 좋은 건, 내 상태에 대해 정확하게 진단을 내리는데 도움되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내가 얼마나 바깥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지, 다 버리고 원하는 길로 얼마나 잘 걸어가고 있는지. 나는 다 버렸고, 그 선택을 의심하는 치들보다는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길을 걷는지 알아주는 이들이 있어 마음이 든든하다. 때로 우리는 세상의 시선에선 우둔한 자이고 누군가에겐 좋다는 길을 마다하는 바보같은 이들이지만, 나는 이 길에 서있고, 그 선택의 합리성을 아는 자들이 세상 곳곳에 적지만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따수워진다.


외로운 길이다. 홀로 버텨내는 일이 전부다. 그래서 이들의 존재가 고맙다는 것이다. 서로 모르는 자여도, 순간을 공유한 자여도. 모두에게 그렇다.


이 일을 하면서 힘이 들 때, 유혹적인 제안이 올 때, 이직 제안이 올 때. 특히 최근 들어 몇 번이고 들었던. 아, 나는 그놈의 '홍보로 올라와라' 소리가 듣기 싫다. 그 표현이 황당하다는 것이다. 취재차 대화 중 앞뒤없이 이런 말부터 던지는 치들이 있다. 이들은 실제 스카웃을 제안하기도 한다. 고마운 마음이 우선이나 마음에 찝찝함이 남는다.


어딜 '올라간다'고 표현하는가. 그 생각 탓이다. '스톡옵션을 주겠다'. '1억을 줄 수도 있다'. 어쩌구 저쩌구. 어째서 기자가 홍보로 '올라가기' 위한 길인지도 알 수 없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다. 선택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앞에서 티내지도 않는다. 다만 그게 정도인 것처럼 내게 권하며 당장 오라고 말하면, 그건 내 안에 약간의 혼란을 준다. 뜬금없다는 소리다. 티 안 내고 웃고 말지만. 진지한 대화를 하고자 한다면, 말꼬리 잡기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변화하는 세상을 알고 있지만, 내 길은 따로 있다. 나는 혼란의 시기를 거쳐 이제 내 손으로 일군 나의 공간에서 더 진심어린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본다. 내가 원하는 길을 위해. 좀 더 벼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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