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익은 키보드들 중 최고의 것만 들고 왔는데, 기계식 키보드를 도닥이는 맛이 필요했다. 하루종일 키보드 치는 직업을 한지 수년째, 플러스 사이드 프로젝트를 마친지 이제 얼마 되지 않은 상황. 엄청난 절약을 해오다가 말도 안 되는 가격에 괜찮은 키보드를 발견해 얼른 구해왔다. 신나게 일기를 써야겠다 결심한 것도 잠시. 한영키가 왜 안 되지? 사실 그간 영문 키보드를 수년째 여러 개 써왔기에 당연히 대체키들이 작동할 거라 생각했는데 무슨. 안 되길래 일단 어제 하루종일 발로 뛰느라 2시간밖에 남지 않은 하루를 잠으로 정리하고, 눈 떠보니 랩톱의 한영변환키가 있잖아. 하하. 이게 무슨 웃긴 일인지. 늘 한영키는 그 곳에 있었을 텐데 수년째 영문 키보드들만 쓰다보니 오히려 그걸 깜박했다. 새로운 키보드가 준 압도감인지 뭔지. 설렘인지. 이렇게 늘 곁에 간단하게 되는 것들을 한 발 두 발 더 생각하느라 가진 게 더 좋은 건데 괜히 꼬고, 그 후에 가진 게 더 좋았잖아? (키보드는 둘 다 좋음. 이 얘기 아님.) 하는 상황들이 있겠지 하고 웃었다. 1초 정도.
돌아와서, 매일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롭지 않은 척하는 게 당연한 이 직업에서, 매일같이 정말 정신없는 날을 보냈는데 어제도 그랬다. 그래도 나가는 게 당연히 좋은데, 어젠 터미널만 몇 번을 간 건지. 1시간 넘게 덜컹거리는 버스를 여러 번 타면 내가 운전한 것도 아닌데 여독이 쌓인다. 한국서도 그랬지만, 여기선 그렇게 이동할 일이 많으니 더 그렇다. 그 와중에 틈틈이 만나자는 중요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시 이동하고 티 안 내고 하는 걸 아무도 모른다. 말해봤자 좋을 게 없어서 그냥 말 안 한다. 내가 당신 만나려 이러한 위험 ㅋㅋ 을 감당하고 있어요 하는 걸 티내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부담주고 싶지도 않으며 그걸로 우월감을 주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개안적 관계에선 모르겠지만 건조한 정보가 필요한 상황에선 그렇다는 것.
일기장을 다시 자주 찾기로 한 건 많은 것들이 일기에 쓰고보면 별 일 아닌 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일기에 극적으로 쓰지도 않고(있던 일에 비해), 톤을 조절해서 쓰기 때문인데, 혼자 알고 이고지고 가면 되는 것들에 힘이 들 때면 일기장에 와서 조금 티내두면 별 일 아닌 것처럼 정리하기 딱 좋기 때문이다. 상처가 되는 것들, 부당한 것들. 그냥 도닥이면 별 일 아닌 것처럼 나를 치유하기 딱이다. 아픈 것들은 훌훌 털어내면 그만이니까. 대부분의 사건은 그렇게 임하지만, 그런 게 아닐 땐 일기장을 찾는다.
아무튼 그냥 키보드 연결한 김에 주절거려 보자면, 하루종일 멀미에 시달리면서도 내 스스로에게도 아닌 체하며 땀을 뻘뻘 흘리는 여느 때와 같은 일상중 여러 인간 군상을 보고 또 그냥 여러 생각이 들었다는 것.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그걸 이용하고자 달려드는 많은 족속이 있고 그걸 보아온 건 꽤 돼서 씁쓸해도 그러려니 하지만, 그냥 또 뭐 암튼. 그랬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