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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Sep 11. 2024

세상은 요지경

자꾸 나의 국장과 부장이 그립길래 왜일까 싶었다. 시스템이 그리운 거란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첫 날부터 떠나야할 곳이란 걸 알았지만 그럴 수 없었기에 버텨보기로 했다. 모욕감을 짓이기며 참아내길 수백번. 몇 번이고 드는 모멸감을 그저 씹어 내었다. 멍청함 없엔 장사 없다. 그냥 눈을 감을 뿐이다. 정의롭지 않은 것을 참는다는 게 아니라, 멍청한 작자들의 놀이를 씹어낸다는 뜻이다. 그저 눈을 감고 귀를 닫아야 했다. 겪어보지 못한 무식의 세계가 이어졌다. 별의별 양아치를 보았지만, 이건 또 새로웠다. 세상엔 참 다양한 유형의 얌생이가 있구나. 그렇게 내 세계를 넓힌다고 합리화했다. 저런 인간들이 있으니 언제나 조심하자고 깨달은 기회라고 여기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리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그러자고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되었다.


사랑받는 자식이었다면 어땠을까? 아 물론 사랑받았겠지. 질문을 바꿔보자. 적절한 유형의 사랑을 줄 수 있는 가정에서 자란 자식이었다면 어땠을까? 가진 걸 몇 번이고 다 버리는 선택을 그래도 난 했으려나? 난 언제나 버리는 게 쉬웠다. 근데 하나 쥐고 못 놓는 세상 곳곳의 양아치들 속에서 숨쉬기가 어려웠다. 그 양아치들의 유형은 세상에 널리 널리 퍼져있었다. 버티는 게 이기는 거라는 말은, 정직한 누군가들에겐 제대로 된 말이지만, 양아치들에게 먹히면 무서운 말이 된다. 


삶이란 건 얼마나 더 치욕을 견디게 할까. 이렇게 치욕스럽게 살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점점 알아간다. 무얼 위해 택한 길인가. 지나치게 나를 괴롭히며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직업은 나를 괴롭혀야 하는 게 아닌가? 점점 답을 모르겠다. 과분한 자리에 있는 이가 너무 많다. 단편적으로 보아 그렇다는 게 아니라 정말 그렇다는 것이다. 점점 세상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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