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 백팩, 선스프레이, 물통. 거기에 편안한 정장 차림이면 무서울 게 없다. 그렇게 나만의 전투복을 입고 온갖 곳을 쏘다닌다. 별의별 일을 다 겪을 때, 그렇게 몇 보든 걷고 나면 그래도 환기되곤 한다. 빨래도 그렇다. 빨래 한 번 하려면 정말 큰 일이다. 한국과 달리 2000보는 떨어진 곳에 내 몸만한 자루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린 후 길을 건너고 어쩌구저쩌구 해서 도달하는데, 뭣 모르던 초반엔 하루에도 몇 번이고 빨래를 하다가 아프고 나선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하루에 한 번만 하기로 했다. 빨래가 정말 많이 나오고 옷도 빨리 해지고 빨래를 하기도 어렵고 체력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래도 몸이 고생이니 머리는 맑아지고 하지만 목의 근육은 아프고 하다. 애니웨이, 빨래를 하고 바다에 가서 수영하고 기구 몇 개 타면 딱이던 것을, 왜 이렇게 위험하다고들 하는 건지 갈 수 있는 곳이 자꾸 돈 써야 하는 곳으로 바뀌고 있다.
외출하면 돈 안 쓰기가 어려우니 어려서부터 도서관을 사랑했고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물론 더 컸지) 나에게 지적 투자를 하는 건 당연하고 늘 배가 고픈 것도 당연한 이 직업을 택한 덕분에 늘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입장으로 집에 그저 누워있는 게 책임감 있는 어른의 자세라고 은연중 생각하던 날들을 지나 (그렇게 하지 않아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나가면 지출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 지금도 여전히 그런 생각을 해야 할 때가 많은 걸 보면 돈이란 건 참 얄궂다. 딱 필요한 만큼만! 주고 그 옛날 전래동화의 근근이 먹고 살았답니다를 실천하며 살게 해주는 걸 보면 말이다. 언제나 하고 싶은 걸 하면 돈은 따라온다고 생각하던 과거들을 지나, 그 땐 100이면 100 그렇게 생각했다면 지금은 80 정도만 그렇게 생각하게 됐다. 뭐, 그래도 그렇게 생각한다. 여전히.
세상 천지에 '얌생이'가 많다는 걸 알고나니 그 옛날 당연한 정직과 가치를 가르치던 동화들이 왜 나왔을까 궁금하던 데 답을 얻었다. 럭키비키잖아. 도덕 교육이 필요한 이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걸 알아버리다니. 세상은 넓고 깡패는 많다. 깡패란 단어도 아깝네. 뭐라 해야 할까. 세상은 넓고 얌생이도 많다. 그래. 차라리 얌생이란 단어가 더 알맞다. 깡패는 뭔가 정의로워. (물론 아님. 깡패 감도 못 되는 치들이 많다는 걸 말하는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