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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Sep 23. 2024

역겨운 것들

걷고 걷는다. 걸으면 많은 게 지워진다. 잘 먹지 않으니 배가 고파서 생각이 안 나고, 갈증이 나니 또 생각이 안 난다. 빨래를 해야 할 옷이 또 쌓이니 또 생각이 안 난다. 말 그대로 사느라 생각이 안 나게 된다. 무엇이? 너와 버리고 온 것들. 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한 그 감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러면서 치열하지 않음이 찬사받는 문화에 적응하려 노력한다. 한편으론 궁금해 한다. 치열할 수 있을 때 치열하지 않음은 후에 어떤 앙갚음을 해올까. 삶이란 건 소중하고 무서운 것이라서 그저 준비하는 게 전부인데 그 준비를 못하게 됨으로써 받을 앙갚음은 얼마나 무서운 것일까. 두려워 한다. 쉬지 않고 뭘 하면서도 두려워 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침잠하자고. 그냥 침잠하자고. 아프지 말자고. 내 뛰어난 사수들의 흔적이 내 안에서 지워지지 않게 그저 침잠하자고 그렇게 나를 다독인다.


무엇을 위해 다 버렸나. 빨리 돌아가는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 어지럽다. 어떤 고통을 선택해야 할까. 뭐가 이리 복잡하기만 한가. 그저 취재하고 일하고 선배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매일 함께 발제로 고민하고 경쟁하던 때가 사무치게 그립다. 기자는 기사로 말하는 게 당연한 과거가 너무나 그립다. 너무나 유치해서 입에 올릴 수 없는 것들에 점점 무기력해진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모든 순간이 충격적이다. 충격적인 말을 수치도, 염치도 없이 그저 해대는 인간들에 경악스러운 것도 정말 몇 번째인가. 


현명한 사람들은 대개 나설 때와 나서지 않아야 할 때를 잘 구분한다. 더러운 것에선 손을 떼는 게 맞다. 정말 얽히고 싶지 않은 인간들에 욕지기가 치민다. 그저 걸을 뿐이다. 걷고 걸으며 역겨운 걸 게워낸다. 걸으며 하늘을 보고 풍경을 본다. 마비되지 않도록, 그저 얽히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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