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걸 다 드러내지 않는 걸 선호한다. 이러한 이유와 생업으로 미뤄뒀던 일기장을 오랜만에 펼쳐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날은 다시 쌀쌀해졌다. 옷장 정리를 매일같이 하는 터라 다시 꺼내둔 짧은 패딩들을 넣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소금빵을 먹고 핫초코를 사마시면서 태블릿 PC를 도닥여야지. 아름답게 물든 하늘에 감탄하며 모자를 눌러쓰고 장갑을 단단히 쓴 채 걸었다. 하나 남은 소금빵. 단 하나도 없는 자리. 돌아서서 다음 계획으로 정했던 곳으로 향했다. 먹고 사는 일은 참으로 부지런할 수밖에 없는 지라, 잘 먹지 않음에도 비상식량은 구비해둬야 하는 터. 마트에서 간편조리식품을 구매했다. 그 전에 선물들을 사고 카드도 샀다. 몇 시간 줄을 섰지만 아름다운 시간이다.
그렇게나 자괴감을 느끼던 자리를 떠났다. 마침내 떠났다. 굿이라도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농담이다) 누명을 쓰는 일이 이어졌던, 시기 질투로 가득한 '이끼' 마을을 떠났다. 후에도 변태같은 이들의 떠보기가 이어졌다. 심심한 자들이 많다. 변태들도 많다. 누군 여기라서 많다고 하는데 (내가 먼저 얘기한 게 아니다) 한국을 돌아본다. 한국에도 변태가 많았다. 하지만 좋은 사람들도 많았다. 늘 나를 지켜주던 것들이 있다. 단단하게 자리잡고 나를 지켜주던 사람들. 이렇게나 남의 지어내는 말들 속에 내가 세상으로부터 문을 닫으려고 할 때마다 그래도 나를 지켜주던 사람들이 있다. 물론 나를 가장 단단히 지키는 건 나다.
감사하게도 좋은 연락들이 온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한다. 이조차 감사하다. 꿈꾸던 하루들이 감사하다. 마침내 부정적인 것들을 쳐낸 내게도 감사하다. 세상엔 악인만 남는 것일까? 모르겠다. 내가 너무 세상을 나이브하게 보고 있나? 그러나 이 직업은 나이브하게 세상을 봐야 하는 직업이 아닐까? 모르겠다. 세상에 없는 '선'을 믿고, 세상에 없는 '정의'가 있다고 굳게 믿고 외치는 게 이 직업 종사자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점점 세상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땐 내 곁엔 도서관이 있다. 책들은 대부분 답을 준다. 그 많은 텍스트들 속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충만해진다. 이 텍스트들 속에 살고 싶다. 시끄럽게 남의 이야기를 지어내는 이들에게서 멀어져, '월든'에 묘사된 삶을 살고 싶다.
참 많은 물건들을 버렸다. 모순적이게도, 가장 좋아하는 것들부터 버리게 된다.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자주 썼기에 닳았고, 더는 살려볼 수 없을 지경이 된 탓이다. 가장 사랑하는 물건은 고달픈 삶을 살게 된다. 가장 바래지고, 가장 많은 모험을 떠나고, 가장 해지는 탓이다. 그렇게 내 한 챕터를 이룬다. 많이 걸었던 탓에 해진 정장, 구멍난 바지, 양말, 운동화들을 보내주었는데, 가장 좋아했던 물건들이다. 늘 현장에서 나를 지켜주던 내 갑옷들. 사랑하는 내 물건들. 연이 다 했으니, 보내주는 게 마땅하다.
난 늘 그렇다. 잘 버린다. 수년 전부터 내 일기를 보고 있는 분들은 알 거다. 난 잘 버린다. 뭐든 잘 버린다. 그게 내 장점이다. 새로운 일을 계속해서 하게 해주는 원동력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