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탈을 쓴 사리사욕은 어디까지 퍼질 수 있을까? 2025년의 한국에서 아직도 여성혐오가 판을 친다. 여성혐오라는 말이 새로운 화두일 때를 뛰어넘은 건 다행이다. 이제는 그래도 한국에서 역차별이란 말이 오갈 정도로 인식 개선이 이뤄진 게 아닌가 했는데(무리수인 걸 알고 있다) 역시나 아니었다. 한국은 어쩔 수 없는 지리학적 특성상 남성 위주의 사회일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다. 사회구조적 문제를 뿌리부터 논하자면 끝도 없으므로, 한국은 어쩔 수 없이(!) 남성 위주일 수밖에 없다. 세계 어디든 안 그렇겠나. 뭐, 정도의 차이다. 그러나 그 정도의 차이가 한국은 좀 심하긴 한다. 일본을 제외한 선진국 기준으로, 후진국과 비교하며 입씨름하지 말자. 내가 사업주라고 생각해봐도 남성을 고용하고 싶은 마음을 십분 이해하는 지점도 있다. 업종의 특성별로 달라질 테지만, 어쨌든 남성이 우위에 있는 것처럼 설정된 사회기 때문에 그 '세팅값'의 차이를 따지고 드는 건 낭비다. (그들에게 어떠한 무조건적인 희생을 지우고 있는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가사일을 평생 여성에게 떠넘기듯, 그들에겐 특정 시점에 어떠한 의무를 지우고 있다. 그걸 기반으로 평생 대우받는 걸 생각하면 해볼법하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직접 겪지 않고는 모를 일이다.)
애니웨이, 이런 상황에서 저출생 원인으론 2030을 후려치고 있고, 단 한 번도 출산의 주체가 돼 걱정한 적 없는 이들이 위에 있으니 당연히 제대로 된 정책은 나올 수 없다. 사람은 선 자리를 기준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선 자리를 보면 된다. 말보다 살아온 걸 보면 된다는 이야기다. 젊은 시절의 멋진 모습을 늙은 자신이 흡혈하듯 사는 건 노욕으로 보인다. 노욕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 젊은 시절에 운좋게, 멘토 덕분에 혹은 사회 시스템 덕분에 혹은 정말 열심히 살아서 이뤄둔 그것들을 기반으로, 남에게 근거없는 혐오 발언을 하게 되는 늙은 시절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건 좀 안타깝고 슬픈 일이 아닐까. 여성혐오를 해놓고 정의인척 하는 것이야말로 위선이며 욕심 아닐까. 혐오할 수 있다. 근데 그걸 속으로 생각하고 마는 게 대다수의 정상인이다. 혐오 발언을 하며 정의의 탈을 쓰는 건 위험한 행동이다.
혼란스럽고 무서운 세상이지만 그래도 세상은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선진국 시민(!)의 비중이 높아지고, 여성혐오에 문제를 제기하는 보도가 이젠 아무렇지 않은 게 되었다. 세상은 느리지만 그래도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시간이 걸리지만, 정의도 제 얼굴을 찾을 것이다. 무섭지만, 느리지만, 나아지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