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든 사람이든 애정을 쏟다보면 어느새 바닥은 금세 드러난다. 아니, 일은 아무리 애정을 쏟아도 사랑해서 사람보다 덜할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을 인격체로서 존중하며 무한한 사랑을 주다보면, 대개 두 가지다. 당연한줄 알거나 감사한다. 후자는 몇 번 본 적이 없고, 대개는 전자처럼 당연한줄 알고 그 애정의 관계를 디딤돌 삼아 선을 넘는다. 누군가의 애정을 보아 넘기고, 무시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왜 최선을 다해 나빠지지 않았는가 또 한 번 생각했다. 알량한 걸 쥐고는, 그게 커다란 무기인양 흔들어댄다. 내가 나빠지지 않는 건 크게 두 가지다. 진지충에 태도 모범생이어서고(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지나치게 보수적이란 것), 귀찮아서다. 그렇게 나쁘게 누군가에게 할 생각도 해본 적이 없고, 그런 마음이 든 적도 없고, 무엇보다 귀찮아서 어찌 그리 할 수 있는지 놀랍기까지 하다.
인간사가 이용의 무대라지만, 네트워킹이라지만, 그래도 정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귀여워서 보아 넘긴 걸 멋대로 휘둘러도 된다고 느낀다면 아주 곤란하다. 최근 누군가 내게 물었다. 인생의 성공 지표가 뭐냐고 말이다. 아주 구체적인 예시를 더해서였다. 듣다보니 어려웠다. 모두 다 성공한 사례로 들렸기 때문이다. 우열을 나눌 수 없는데 굳이 순위를 매기라고도 했다. 순위를 매기고보니 영 찝찝했다. 누굴 1등으로 꼽는 게 이상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화려함, 영성, 기타 등등.
내가 성공한 삶으로 평가하는 것과 소중한 사람에게 주고 싶은 삶을 각각 꼽으라고 해서 답했다. 가장 많은 사람이 꼽은 1등은 내가 최하위로 꼽은 A라고 했다. 나는 그 A를, 내가 아닌 소중한 사람에게 주고 싶은 삶으로 꼽아뒀다. 시간 부자이자 건강하고 무탈하며 평온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 A를 타인들은 평가의 대상으로서 1등으로 꼽았다니. 정작 내가 1등으로 꼽은 B는, 다른 사람들이 소중한 이에게 주고 싶은 삶이라고 했다. 누가 봐도 B의 인생 난이도가 높다. 내가 최하위의 삶으로 꼽은 A는 가족애로 충만한 집이었다. B는 내 기준으로는 성공한 이다(자세한 건 비밀이다). 뭐 여러가지로 웃겼다. 몇 초만에 대충 말한 거지만, 그냥 그 결과가 웃겼다. 정반대라니.
돌아와서, 호이가 계속되면 둘리인줄 안다는 걸 잊지 말고 살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사는 게 참 팍팍하다. 그래도 어쩌겠나. 숨을 쉬고 있으니 오늘은 살아야지. 다시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믿고, 그냥 내 길에 집중하자고 생각한다. 그게 유일하게 숨을 쉴 방법이므로 말이다. 누군가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같은 건 좀 뒤로 미뤄두자고도 생각한다. 덤덤하게 쓰고 있지만 온 몸의 피가 식는 기분이었다. 참 뒤통수 맞을 일이 많지만, 그게 다 좋은 걸로 돌아올 거라 믿는다. 보시다 보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