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 없는 아침이었다. 한국 뉴스를 보겠다고 한 게 화근이었다. 한국 뉴스 화면에서 마이크를 들고 있는 아주 낯익은 얼굴을 포착하고는 역겨워졌다. 아는 얼굴이 나오는 건 태반이지만, 역겨움은 수년만이었다. 그 역겨운 기억이 떠오르자 왜 저 곳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는지, 왜 그리 싫었던지, 저 바닥 깊이 가라앉아있던 찌꺼끼들이 둥둥 떠올랐다. 나는 기댈 곳 없는 사람이다. 기댈 곳 없이, 손에 쥔 것 없이, 그냥 꽤나 불쌍하게 살았던 사람이다(자기연민 X, 단순 현상 서술O, 당시의 내가 이런 말을 들으면 불쾌해 할 것이지만 돌아보니 그렇다는 것). 그래서 나는 그런 일을 당하고서도 일을 계속 해야 했다. 그런 걸 말할 수 있거나 상담할 수 있거나 지지하는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참으로 부러워 하고 멋지다고 생각한다. 몇 번이고 그런 일을 겪어도 웃으면서 일하고 술자리에 가고 일을 했던 그 지옥같던 날들은 여전히 기억 속을 떠돈다. 그리고 그런 걸 입 밖에 내지 않는 이유는, 한국에서 그런 일을 어떻게 대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시끄러운 건 좋지 않다.
그 후로도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 구석에 미뤄뒀던 것들이 한국을 보면 떠올라 괴로웠다. 생각하지 않다가도 내가 말하지 않는 옛날에 대해 제멋대로 상상하고 손가락질하는 이들이 가까운 이들이라 더 괴로웠다. 이런 건 타인이 주는 모멸감을 뛰어넘어 그 예전의 내가 매일같이 고민했던 생존의 문제를 고민하게 한다. 산다는 게 아무리 괴로운 일이라지만, '이렇게까지 처절하게 혼자이고 처절하게 고통스러울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매일같이 새로 새겼다. 다행스럽게도 일은 그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게 해주었다. 혹자는 나를 hungry ghost라거나 simcha를 찾지 못한 안쓰러운 이라고 생각한다. 일중독에 아주 독한 b*****라 생각한다. 다 틀렸다. 내 뇌가 살 수 있는 곳은 일밖에 없다. 나를 지킬 직업을 주고 돈을 주고 집을 주고 먹을 것을 주는 것.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주는 건 일뿐이었다.
처절한 기록을 남기고 싶지도 않고 그런 기억을 돌아보고 싶지도 않다.
한국이 시끄럽다고 괜히 뉴스 보지 말자.
왜 그 곳에 가고 싶지 않았는지 처절하게 다시 한 번 생각나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한다.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겠지.
그러면서도 나는 이 짧은 순간을 지나고서는 스스로에게 "그래서 뭐 어쨌다고. 어쩌라고"라고 말하며 채찍질을 할 것이다. 그게 나을 거라는 걸 아는 차가운 머리가 있기 때문이다. 유치뽕짝으로 차가운 머리 어쩌구 하는 게 아니라 나는 참 선택지가 없는 사람이다. 한탄할 필요 뭐 있나. 뭐든지 '덕분에!', '그런 환경 덕분에!' 달릴 수 있다고 생각해야지 별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