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juvanate, 만물은 윤슬이 됐다

by 팔로 쓰는 앎Arm

언어란 아름다운 것이다. 한국에선 말을 삼가는 게 미덕이었다. 직업적 특성 탓일 게다. 우리는 말을 삼가고 또 삼갔다. 질문하는 기자를 괴롭히던 선배들을 기억한다. 언론사의 크기별로, 서열별로 우기던 선배들을 기억한다. 그 우스운 얼굴들을 기억한다. 어려보인다는 이유로 반말을 내던지며 비키라던 그 얼굴들을 기억한다. 별 거 아닌 해프닝이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우리는 소속을 말하지 않고 잠시 후 벌어진 일을 기다렸다. (자신들이 원하던 기준인) 서열이 들통나 그들이 비켜야 하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찰나에 그들이 보인 찌질한 모습들을 기억한다. 웃긴 일이다. 신경도 쓰지 않는 이들에게 달려드는 파리같은 이들이 있다. 내가 반짝이는 조명인가보구나. 그러면 될 일이다. (자의식 과잉 X 해학 O)


다른 언어로 말하는 일이 더 많은 이 곳에서 나는 퍽이나 행복하다. 생각, 느끼는 것들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 이 언어의 자유로움은 나를 숨쉬게 한다. 모든 게 반짝이는 것들이 된다. 우리는 마음껏 행복해 하고 기억을 풍부하게 표현한다. 자제하라, 절제하라. 그 지침이 사라지자 만물은 윤슬이 됐다. 형용사의 늪 속에서 우리는 마음껏 행복해 한다. 수식어가 어쩌구 하는 말까지 가지 않아도 행복하다. 사실을 건조하게 말함에도 행복하다. 그럴 수 있는 자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과대망상, 확장해석, 일반화의 오류들 속에 갈 곳 잃었던 개인들이 반짝인다. 다 좋다는 게 아니다. 일은 더 미친듯히 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사랑한다. 혹자는 이 곳과 어떤 문화가 (어디라고 쓰고 싶지 않음 O) 앞뒤 다르다거나 앞에서 친절하고 뒤에서 다른 말을 한다는둥 별의별 말을 해대지만 그게 낫다. 그걸 우린 프로페셔널이라고 부른다. 무슨 말이냐면, 일부 한국의 좋지 않은 문화처럼 남 발목 잡고 물어뜯는 데 시간을 쓰는 게 아니라, 오지랖을 부리는 게 아니라, 그냥 일을 한다는 것이다. 직장에선 친절하게 태도를 지키며 일하면 된다. 그게 가능한 곳이라니. 사랑이다. 그 배경엔 언어가 있다. 언어는 사랑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Who's Afraid of Little Old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