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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Oct 10. 2016

어쩌면 할아버지는 그때 죽었다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이상하게 들릴 거 알면서도 적는다. 영화 초반 할아버지가 제이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그 순간, 할아버지는 이미 죽었다. 둘만 아는 긴밀한 공감대와 은밀한 이야기들. 그걸로 이뤘던 너와 나의 세상. 거기에 사실관계를 하나부터 열까지 따지고 들며 '그건 틀렸대'라는 타인의 잔인한 칼날을 들이대는 순간, 할아버지는 이미 죽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기 1위라길래 큰 기대를 하고 들어갔는데, 사실 영화를 보며 내 머릿속에 가장 크게 남은 장면은 영화 초반의 이 대화 모습과 둥둥 떠다니는 아름다운 엠마의 모습, 드레스뿐이다. 아, 묘하게 지적인 에바 그린도.


제이크는 에이브다. 넌 나고 난 너다. 물론 두 사람은 명확히 다른 존재며 심지어 할아버지와 손자라는 명확한 스탠스를 갖고 있지만, 그들이 그들의 세상에서 맡은 역할은 다르지 않다. 동질적 존재인 그들, 그걸 먼저 알았던 선구자 할아버지. 그리고 자꾸만 세상의 눈을 들어 할아버지를 의심했고 결국 잔인한 사실을 입 밖으로 내뱉었던 제이크. 둘 사이의 파멸은 그 때라는 생각이 영화를 보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이쯤 되면 나는 꽤나 관계의 형성에 있어 초기를 중시하나 보다. 한 번 깨진 신뢰는 회복하기 힘들고, 그걸 복구하려면 제이크처럼 기나긴 모험을 하며 공감대를 형성할 능력을 배워야 한다. 어쨌든 회복은 된다. 엠마의 아름다운 드레스, 대를 이은 사랑을 보면서 할아버지의 빈자리는 계속 느꼈으나, 그걸 제이크가 비교적 쉽게 대처하면서 역시나 판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이크의 말에 사진을 덮고 그의 옆에 바짝 앉아 살포시 어깨를 내어주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왜 이렇게 아련한 걸까. 관계를 깰지 모를 위험한 말은, 그 관계를 위해 해야 하는 걸까 말아야 하는 걸까. 그 말을 하지 않고 의구심을 품은 채 유지한다면 장기적으로도 건강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만일 제이크가 그때 할아버지를 의심하지 않았다면 얘기는 달라졌을까. 그럴 리 없다 해도 마음만은 서로 더 긴밀하게 함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곁을 내어준다는 것은 어쨌든 호의의 표시다. 그게 적의를 감추고 연기를 하는 남남의 관계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일반적 상황을 얘기하자면 그렇다. 곁만 내어주는 게 아니라 서로의 내면을 드러내 보이고 드는 의구심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는 건 더 깊은 관계다. 어지간한 신뢰가 형성되지 않고서는 관계가 깨질 수 있는 엄청난 모험이기도 하다. 그 모험을 하기란 꺼려지는 게 대부분이다.


한 여자를 찾기 위해 어떤 고난도 이겨낸 남자의 초기 모습에 감동하기엔 너무 비현실적이고, 현실에 물든 사람으로서 기억에 남는 부분은 그저 이거다. 에이브와 제이크의 긴밀한 유대, 그리고 둘 사이의 대화법. 나는 아직도 너무나 어렵다. 가까운 사이라면 어디까지 진실을 드러내야 하는 건지, 당신의 빈틈을 내가 어디까지 당신 눈 앞에서 파내야 하는 건지, 역으로 당신이 내 허점을 어느 정도까지 내 앞에서 말하는 걸 듣거나 용납할 수 있을지.


나를 믿어줄지 모르면서도 계속해서 내가 선택한 상태에게 거는 기대…. 그 선택에 우연이든 타의든 뭔가 가미됐더라도, 어쨌든 당신 곁에 그가 있다면 무의식이라도 자의에 의한 선택이 어느 정도는 들어갔을 테니까…. 당신이 긴밀한 비밀을 공유한 후 그에게 거는 기대와, 그가 세상의 눈으로 당신을 의심할 때, 묵묵히 다시 스스로의 내면에 시선을 돌린 채, 그를 향한 손을 거두지 않고 그저 기다리는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다 한들 그 기다림은 응답받을 수 있을까. 


할아버지가 제이크의 말을 듣고 한 선택은 '그만하자'. 그리고 곁을 내어주고 기다린 거다. 알고 있었을 거다. 시간이 흐르면 파편이 맞아 들어가리라는 걸 말이다. 그러나 인간사는 그렇게 되는 게 많으면 좋겠지만 아닐 수도 있어서 그저 아름답게만 보기 힘들다. 때때로 해피엔딩을 위해 순간의 양념을 쳐야 하는 일들이 있는 거다. 그래서 피곤한 거다. 차라리 모험을 통해 관계의 진실함과 신뢰를 이뤄가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 편이 훨씬 수월할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적이 분명한 괴물 같은, 눈에 보이는 적들과 싸워 이기는 과제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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