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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Oct 23. 2016

'인과', 뚜렷하면 얼마나 좋을까

영화 '후세: 말하지 못한 내사랑'

기대가 충족되는 사랑. 그런 게 있을까.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 여심을 뒤흔들고는 결국 떠나버리는 남자. 그가 보내는 답장 하나에 다시 아름다운 미래를 꿈꿔보는 남겨진 여자. 그 흔한 결말에도 이 사랑이 가슴에 남는 건 서로의 기대를 충족해주는 예의를 갖춘 이들의 관계를 엿보았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이의 만남에 뚜렷한 이유가 어디 있으랴. 그냥 스치듯 지나갈 인연이 사랑이 되기까지는 또 어떤 호르몬의 장난이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시노가 왜 하마지를 택했고 하마지는 왜 시노를 기다리게 됐는지. 후자는 일련의 사건과 시간이 설명할 수 있다 해도 전자는 그렇지 않다. 원작 소설을 읽어봐야만 알 것 같은데, 일단은 그렇다. 초반에 하마지가 산에서 '통하여' 사냥한 인연. 그 개와 시노가 어떤 연관일까. 알기 위해서는 영화를 곱씹어 봐야 할 것 같다. 그가 시노였다면 왜 시노는 자신에게 총부리를 겨눈 하마지를 선택했는지도. 아마 그 '통함'의 기억 탓일까. 그렇다면 하마지가 다음 장면에서 먹은 푸짐한 고깃국은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필시 그건 사냥 후의 요리였을 텐데 말이다.


'어른들의 만화'라는 진부한 해석을 달기 전에, 연인 혹은 간질거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잔인한 갈등들과 그 후의 이별까지 아름답게 담아줘 고맙다. 생각지 못했을 어떤 행동이 의도치 않은 미래를 불러오듯, 시노와 하마지의 만남도 그랬다. 아름답게 '퉁치는' 걸로 주고받는 사이가 될 줄 알았던 둘은, 제삼자의 간섭으로 관계의 어려움에 봉착한다. 제삼자가 배척할 수 없는 가족, 동족이었다는 점에서, 이 갈등은 어쩌면 필연적이었다.


가장 추악한 곳에 다다른 후 시노가 하마지에게 건넸던 고백과 하마지가 추악한 목적으로(그것이 남의 것이었든, 몰랐든 중요하지 않다) 시노에게 상처를 입힌 모습은, 서로의 바닥을 드러내는 관계의 단면을 말하는 것만 같다. 전생의 원인들, 그리고 현생의 이유들이 쌓이고 쌓여 만난 두 사람은 결국 현세에서도 또 여러 이유들을 만들어 낸다. 서로 만날 수밖에 없는. 하지만 그걸 푸는 건 이제 제 몫이다. 의도하지 않은 '인'을 마구 낳았대도 '과'를 책임지지 않는 관계들이 널브러진 세상에 산다. 우리는.


그래서 관계에서 마무리를 잘해주기를 기다리는 것. 혹은 아름다운 매듭, 적절한 끝을 내는 건 어렵고도 아름다운 일이다. 그걸 감당하려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바닥을 드러낸 시노는 결국 혼자라는 사실에 다시 직면한다. 혼자라서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기엔 버겁지만 또 어쩔 수 없다. 토로할 곳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그때 나타난 하마지의 모습은 시노에겐 어떤 그림으로 다가왔을까.


살면서, 늘 혼자라고 느꼈을 때, 간절히 기다린 그 사람이 눈 앞에 나타난다면 그 기분은 어떨까. 쉽게 느끼지 못한 감정이라 시노의 그 환희를 예측하기가 더 어렵다. 파국으로 치닫는 이에게 '괜찮다 힘들었지 이제 다 괜찮다'. 이 한 마디 해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그 말 하나가 그렇게 어렵고 곡해되는 말로 들릴 이상한 세계에 살다가 '원하면 내 모든 것이라도 빼먹으라'는 말. 물론 그는 그러지 않을 테지만, 그 단단한 신뢰의 언어를 들었다면, 이전의 모든 극한 고통은 눈 녹듯 사라진다. 시의적절할 때 등장해 적절한 위로를 건네기란 참 어려운 일이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위로를 받지도, 하지도 못한 채 마음에 고통만 안고 산다.


그걸 토로하고 싶은 가장 가까운 상대가 나타난대도 다음이 무서워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인과라는 걸 어떻게 매듭지어야 할지 모를 일 투성이다. 하마지가 1년 반을 기다려 시노의 답장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두 사람의 사이에 그런 냉각기, 공백이 필요했기 때문이겠지. 관계가 삶의 전부는 아니니 흘러가길 기다려야 할 여러 감정들이 있었을 테고 말이다. 그런 시간을 기다려준 사람이 있다는 건 세상 무엇보다 값진 일 아닐까. 기대를 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세뇌를 하는 게 습관화된 세상에서, 내 기대를 충족해주는 사람 하나 있다는 것. 그것보다 더 든든한 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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