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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Jan 22. 2017

'드레스메이커' 깨어있는 자의 힘

사필귀정, 진실의 편에 끝까지 설 용기

"Watch and learn Gertrude. Watch and learn"


이 영화를 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수년 전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본 후부터다. 동네라고 부르기에도 소박한, 어쩌면 황량한 작은 마을에 들어온 깨인 여자 틸리. 사막 빛의 그 촌동네에 그의 마법 같은 손길이 지나가자 아름답고 화려한 옷으로 치장한 이들이 가득한 생명력 있는 마을로 잠시나마 탈바꿈한다. 아주 잠깐은 말이다. 힘 있는 자의 의도 아래 죄 없이 철저하게 타자화돼 모든 역사를 품고 쫓겨나야만 했던 틸리가 이 마을에 벌이는 일은 혁명이다. 아름다운 혁명.


틸리는 피의 복수를 꿈꾸지 않는다. 그저 자기 손에 쥐어진 아름다운 재능을 사용할 뿐이다. 으레 글을 쓰는 자는 글로, 그림을 그리는 자는 그림으로 자신의 속내를 내비쳐 아는 이는 알게 하듯,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천부적 재능인 옷 만들기로 마을을 바꿔나간다. 특별한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깊이가 없는 자들이 말만 앞서는 것과 달리 틸리는 행동을 먼저 보인다. 그 촌동네에서 틸리에게 감복하지 않을 만한 이는 없었다. 그의 재능은 편 가르기를 떠나 탁월했기 때문이다.


권력자가 자신의 추악한 과거를 숨기려했던 탓에 홀로 마을에 남아 미친 체하며 살아야 했던 몰리는, 딸의 귀환도 당장 반기지 못했다. 몰리가 정말 미쳤던 것인지 혹은 후를 도모하려 미친 체했던 것인지, 그래야만 자신을 감시하는 눈길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에 선택했던 방법일지는 동네 사람 아무도 알 수 없다. 마지막이 가장 큰 가능성이겠지만. 몰리가 든든히 버텨준 덕에 틸리는 자신의 계획을 하나하나 수행해간다.


약자를 괴롭히며 안위를 누리던 이들이, 필요할 때 찾아와 아첨하는 꼴을 보는 건 묘한 느낌을 준다. 그들은 악하다. 비난받아 마땅하다. 살면서 만나본 일당이다. 마구 욕하고 싶은 대상이다. 그래서 틸리의 복수가 현명해 보이고 멋지다. 누군가에겐 분명 유치했을 수 있을 설정이 배우의 힘으로 설득력을 얻는다. 케이트 윈슬렛이 이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과연 그 장면들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을까? 확신하기 어렵다.


사람들이 얼마 이상 모이면 거긴 권력이 생긴다. 알게 모르게 말이다. 누구도 모르는 새 혹은 누군가는 인식해도 묵인하는 새 어떤 카르텔이 생긴다.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명맥을 이어가는 조직일 뿐이다. 그 조직에 틸리가 돌아온 건 사실을 바로잡기 위함이다. 그는 파리에서 멋진 삶을 이어갈 수도 있는 사람이다. 그만한 재능을 지녔다. 하지만 틸리는 돌아왔다. 그게 그가 남들과 다른 점이다.


남들이 만들어낸 가짜를 틸리는 묵인할 수 없었다. 남겨진 이들이 묵인했던 그 꼴을 틸리는 묵과하지 않고 마주했다. 그래서 비틀린 권력관계와 기생충처럼 붙은 일부 족속들을 쳐낼 수 있었다. 물론 틸리는 다 가지지 못했다. 힘든 과정은 오롯이 안았지만 결국 그 후 다시 혼자가 되었다. 이제 달라진 점은 자신이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는 것, 스스로 믿지 않던 그 사실이란 게 정말로 가짜였다는 것이다. 수십년을 안아온 과업을 해결한 틸리의 삶은 이제 다르다. 파리로 떠나며 불에 타는 촌동네를 바라보는 틸리의 시선이 의미심장한 것은 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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